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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무제 (1)

Neble 2016. 3. 5. 07:37

워프하는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바라보는 우주는 언제나 짐을 매료시켰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위성 에르겔리우스 2에 보급 지원을 가는 중이었다. 윗분들은 참 순진한 구석이 있어.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채 행성연합에 부담스러운 요구를 하는 현 에르겔리우스 2의 임시 수장 고르를 어르고 달래서 에르겔리우스 2가 연합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은 짐이 내심 혀를 찼다. 에르겔리우스 쌍성은 상당히 외곽에 위치한 행성단인지라 5년 탐사로 그나마 먼 우주로 나온 엔터프라이즈호가 워프 9 속도로 두 주는 가야 만날 수 있는 행성이었다. 그저 자원 말고는 볼 것 없는 행성이 버텨야 얼마나 버틴다고 그 요구를 다 들어주는지 모르겠다는 게 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원 채취에 대해 과도한 세금을 매겨오던 행성 정부에 반발하던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니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분쟁은 일으키고 싶지 않을 텐데 이참에 라툴리움이나 싸게 공급받을 것이지. 그래도 오랜만에 워프 엔진을 풀가동하니 스코티는 신나겠어. 그런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함장님.”

뭐지, 스팍?”

 

멍하니 생각에 잠긴 와중에도 짐은 스팍의 목소리라면 귀신 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너무 심할 정도라서 듣지 않아도 될 말까지 들어서 그렇지. 며칠 전만 해도 그렇다. 물 순환 시스템이 말썽을 부려서 수치가 맞지 않는다는 스코티의 하소연에 함께 이상을 찾아내고 고치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식당으로 향하는데 스팍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잠을 잘 못 주무셨을 테니 함장님께는 나중에 전달하도록 하지.”

 

우후라로 짐작되는 상대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나 해야겠다고 발을 떼는데 또 다시 스팍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아내에 대해서는 당분간 대위만 알고 있으면 고맙겠군.”

 

늘 본능에 충실하지만 수면 부족으로 더욱 더 본능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던 짐은 그대로 발길을 돌려 함교로 향했다. 스팍과 우후라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은 적도 없고, 그런 낌새도 눈치 챈 적이 없다. 스팍에게 아내가 있다는 게 자신에게도 이렇게 큰 충격인데 우후라에게는 과연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짐의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나중에 전달하겠다는 그 소식이 며칠이 지나도 오질 않으니 짐은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러게 그런 말은 그냥 안 들었어도 좋았잖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

 

에르겔리우스 2로 출발한지 벌써 일주일 째였다. 워프 속도가 빠를수록 경로 상의 위험에 반응하기 어렵다. 때문에 고속 워프에 들어가면 조타수는 계속해서 안전한 경로를 탐색하고, 교신원은 다른 함선과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주변의 교신에 귀를 기울인다. 일등 항해사는 이런 정보를 취합하여 보고하고 함장은 일등 항해사의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항로가 안전한지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사실 고속 워프는 엔터프라이즈호 선원들이 가장 긴장을 하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엔터프라이즈호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속 워프의 기간을 일주일 이내로 한정하곤 했다. 고속 워프가 길어질수록 선원들의 피로도가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이례적인 2주짜리 고속 워프 중에도 짐이 잠시 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엔터프라이즈호의 탐사 햇수가 길어지고 고속 워프 경험이 늘어나면서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지, 결코 한가하거나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짐은 경로 상에 어떤 위험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긴장하며 스팍의 말을 기다렸다.

 

에르겔리우스 2에 제 아이가 있습니다.”

 

짐은 제 아무리 명령이라도 엔터프라이즈호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한숨 돌릴 시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헛것을 들을 정도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함장석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제니스, 미안한테 커피 한 잔만 가져다주겠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체콥의 목소리가 함교에 울려 퍼졌다.

 

일뜽 황해사님의 아이롸고요?”

 

게다가 제니스와의 통신이 끊기지 않은 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등 항해사님의 아이라고요?”

 

함장석 스피커로 들려오는 제니스의 목소리에 짐은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 함선 전체에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아닐 거야. 커피는 됐, 아니지. 커피는 그대로 갖다 줘. 그리고 술루. 워프 2로 속도 낮춰 줘. 우후라, 갑자기 속도가 떨어지면 스코티가 놀랄 테니 선원들의 피로가 쌓여서 한숨 돌리고 간다고 해. 그리고 스팍, 그 이야기는 커피 마시고 하자.”

 

함교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하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우주를 보며 반짝이던 짐의 눈가에 며칠 간 밤을 새웠을 때나 볼 법한 시커먼 그림자가 생겨난 것만이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었다.

 

 

 - - -

어디서 본 것 같은 클리셰들의 짬뽕. 잠이 안 와서 그냥 되는대로 휘갈긴 거라 뒷내용은 나도 모름. 유쾌해 보이지만 사실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심드렁한 커크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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