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열다섯 살에 순결을 잃었다. 제이크는 짐보다 두 살 많았는데 경험은 훨씬 많았다. 그 때의 일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일어나보니 온 몸이 다 쑤시더라는 것과 리버사이드에서 내내 따라붙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갖게 되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처음부터 짐은 소문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짐을 단순히 ‘조지 커크의 아들’로만 보지 않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좋지 않은 관심인 걸 알면서도 그 소문에 흠뻑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문 때문에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사관학교 생활은 신선한 시작이어야 했다. 거기서 짐은 밤일 좀 하는 애도 아니었고 ‘조지 커크의 아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짐은 그냥 이름 모를 낯선 생도였다. 그의 명성이 어떻게 사관학교에도 퍼지게 됐는지 짐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아카데미 생활은 리버사이드에 있을 때 보다 나은 편이었다. 적어도 짐은 흔한 날라리는 아니었다. 짐은 성공한 날라리였다. 섹스가 무척... 지루하지 않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었다. 섹스는 늘 똑같았다. (운이 좋다면) 약간의 전희가 있고, 박고, 끝났다. 짐은 대체로 그냥 누운 채 섹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짐은 여자랑 섹스 하는 게 좋았다. 그가 주도권을 잡으면 적어도 뭔가 할 게 있으니까.
그래도 짐은 불평하지 않았다. 짐은 늘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섹스하기 쉬운 상대로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낳아주신 어머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남들이 사랑할 리가.
***
이상하기도 하고 또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행동의 원인을 자기가 제공했는지 짐은 긴가민가했다.
스팍은 그러니까... 음, 친절했다. 친근하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벌칸 성격에도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이상해서 짐은 그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다. 맥코이와 이야기해보려 했지만 맥코이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뜨며 그 초록 피 도깨비는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법을 모른다고 짐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 (맥코이가 그랬다는 거다. 짐이 아니고.)
그래도 짐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하는 친근한 인사, 같이 밥 먹자거나 체스를 두자는 말, 아니면 정말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팍이 짐이라고 부르는 게 잘못된 것 같았다. 어쩌면 꽃이나 초콜릿,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시작된 어깨 안마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좀 뻐근하기도 했었는지라 짐에게 불만은 없지만 벌칸이 다른 사람이랑 닿는 것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다.)
그래, 불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스팍은 5년짜리 임무 시작을 좀... 괜찮은 정도로 해보려는 모양이다. 처음 오개월간 짐은 미약하게나마 화해를 하려고 했고 스팍은 임무 외의 시간이면 무시했다. 일 년 쯤 되자 둘은 이제 겨우 준비 운동을 끝내고 친구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면 그때 무시했던 게 미안해서 그러나? 그게 젊은 함장님이 겨우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도 꽃이나 초콜릿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안마도 그렇고. 스팍은 그게 뭔지 모르나? 그래, 문화적 오해 뭐 그런 것인가 보다. 아니, 그게 맞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짐은 정성스레 새로운 장미 꽃다발을 구석에 놓인 꽃병에 꽂고, (짐은 꽃을 좋아했다. 그게 뭐? 짐은 그 사실을 후련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나이였다.) 스팍의 방으로 가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대화를 해야 한다 해도 반드시 이 혼란을 해결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우연의 일치로 방을 나서자마자 짐은 스팍과 마주쳤다. 스팍은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서서는 등 뒤로 손을 감췄다. 저건... 스위스 초콜릿 한 박스?
그래, 맞네.
“스팍, 할 말이 있어.”
짐은 단호했다. 스팍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슨 일 때문이시죠?”
“그냥 따라와.”
짐은 쿵쾅거리며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스팍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스팍...”
짐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을 멈췄다. 아니 어떻게 함장이 부함장더러 알지도 못하면서 섹스하자고 하는 건 그만하라고 말을 하냔 말이다. 함장 안내서에 꼭 있어야 돼. 물론 짐은 다른 함장들이 이런 특수한 상황에 놓인 적은 절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 너 평소랑 달라.”
스팍은 더 꼿꼿해진 것 같았다. 그게 된다면 말이다.
“그렇습니까?”
짐은 겨우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그래. 어, 내 말은 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그.. 꽃다발이나 초콜릿이나 음... 어, 안마 같은 거?”
“압니다. 맥코이 선생이 알려주셨습니다.”
짐은 콧대를 만지작댔다.
“그랬겠지. 뭐라고 알려줬어?”
스팍이 아무 말이 없자 짐이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부함장은 약간 안절부절못한 채 정말로 귀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스팍 부함장?”
“죄송합니다, 함장님. 맥코이 선생께서는 그런 선물을 하는 게 지구 문화에서는 연애하고 관련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또한 인간들은 보통 구혼 예정자가 하는 신체 접촉을 즐긴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연애하고 관련이 있다고?”
짐이 스팍의 말을 끊었다.
“구혼 예정자?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고?!”
스팍은 어리둥절해 했다.
“알고 있었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맥코이 선생이 절 기만하신 건가요?”
짐은 목 뒤를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아니, 안 그랬어. 난 그냥...”
“그냥 뭡니까, 함장님?”
“그냥 네가 모르는 줄 알고. 난... 그냥 나랑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그러는 줄 알았지.”
스팍이 눈을 꿈뻑였다.
“그러시군요.”
둘 다 어색해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짐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연애 그런 쪽으로?”
“놀라신 것 같습니다.”
짐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끌린다는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스팍이 조용히 대답했다.
끌린다. 그렇군. 그렇겠지. 당연히 짐이 오해할 만 했다. 스팍은 연애 상대나 뭐 그런 장기적인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스팍은 그냥 같이 뒹굴 상대를 찾는 거였다. 뭐, 그건 짐이 할 줄 아는 거였다. 섹스 하고 나서도 스팍이 어색해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짐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좋습니까?”
스팍이 눈을 깜빡였다. 짐은 스팍에게 다가가 기대고는 가장 멋진 (가짜) 미소를 지었다.
“원한다면, 가져.”
짐은 시선 너머로 스팍이 귀 끝을 엷게 물들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에 짐은 약간 흥분됐고 미소가 조금쯤은 진심이 되었다.
“지금 할래?”
스팍은 뒤로 살짝 물러났지만 시선은 짐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예정이 없습니다.”
“그럼 왜 물러나는 건데?”
스팍이 대답했고 짐이 물었다.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스팍의 귀를 물들인 초록빛이 볼까지 내려왔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 참 유별나네.
“표준 함선 시각으로 오후 8시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짐이 싱글거렸다. 스팍 말고는 정확한 시간을 정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러다 문득 다른 문제를 깨달았다.
“데리러 온다고?”
그러나 스팍은 이미 떠난 뒤였다.
***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짐은 초조하고 또 초조했다. 열네 살 이후로 짐은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인지 짐은 스팍이 자신을 번화가에 데려가 밤이 깊어지면 남자 화장실에서 더듬으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삼십여 분은 급정거라도 한 모양이었다. 뭘 해도 일 분 안에 질려버려서 짐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기나 할 뿐이었다. 짐은 벌써 샤워를 마치고 유일하게 가진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오후 8시 정각에 스팍이 또 다른 꽃다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평온해 보였다. 기도 안 차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데이트를 신청한 사람은 스팍인데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 사람이 짐이고, 완전히 당황한 사람은 스팍이었다.
스팍은 짐에게 꽃다발을 건넸고, 짐은 나중에 빈 꽃병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상 위에 어색하게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좋은 밤입니다. 제가 관측 층에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따라오시죠.”
스팍은 평소보다도 훨씬 뻣뻣했다. 꼭 연습한 대사를 읊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짐은 웃음이 나왔다.
“안내 해.”
관측 층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스팍이 정말 곁에 있기 때문에 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스팍은 스팍이고 또 짐에게는 (짐의 기준으로) 오랜 친구라서 이 데이트로 뭔가가 어떻게든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짐이 초조해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걸으면서 짐은 스팍이 입고 있는 옷을 눈여겨보았다. 스팍은 적어도 경우에 맞게 유니폼은 입지 않았지만 지금 입은 옷이 더 낫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 옷은 데이트보다 장례식에나 어울릴 새까만 정장이었다. 사회성이 결여된 부함장을 향한 애정이 짐에게 밀려왔고 짐은 더 밝게 웃었다.
관측 층에 도착해서 짐은 약간 놀랐다. 관측 층은 평소와 다름없이 어둡고 조용했지만, 한 가운데에는 기가 막히게도 촛불이 켜진 저녁 식탁이 놓여있었다. 준비된 요리를 자세히 보니 짐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흠. 원나잇치고 공을 너무 많이 들인 거 아냐? 스팍은 공을 들이면 제대로 들이지. 하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스팍이 하는 일이니까. 완벽주의자를 꼽자면 스팍 외에 누가 있겠나.
그날 저녁은 매우 판에 박힌 듯이 흘러갔다.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주로 일에 관한 거였지만. 언제부터 짐이 일에 관한 이야기나 하는 사람이 된 거지? 왜 이상하지가 않은 거지?) 식사를 마쳤을 때는 스팍이 짐을 방까지 데려다 줬지만 잘 자라는 입맞춤만은 하지 않았다.
잠깐, 뭐라고?
누군가 스팍을 데려다가 원나잇 스탠드가 뭔지 설명해줘야 했다. 짐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둘은 손을 여기저기 스친 것 말고는 거의 닿지도 않았다. 짐은 혼란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만족스러웠다. 그 사실에 짐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
짐은 삼 주째나 되어서야 자신이 스팍과 연애 중인 걸 알았는데, 그나마도 맥코이가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뻔했다.
“당연히 너네 연애하는 거지. 임무 끝나면 같이 있지, 같이 밥 먹지, 너네 연애 하는 거 맞아. 그럼 뭔 줄 알았냐?”
짐이 설명하자 맥코이는 한참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짐을 바라보다 훌륭한 결론을 내렸다.
“이 멍충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팍이 너랑 섹스나 하려고 했다고? 그렇다고 쳐도 너랑 데이트 하는 팁을 준 사람이 나야.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가 있냐?!”
짐은 잘 모르겠다는 듯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 멍충아.” 맥코이는 짐이 또 들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팍한테 왜 구닥다리 팁을 준거야?” 짐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스팍이 너한테 꽃다발 주고 안마해 준다면 재밌을 거 아냐.” 맥코이가 낄낄거렸고 짐은 그 순간 맥코이를 확 후려치고 싶었지만 건강검진 중에 이 특별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맥코이가 낄낄거리기를 멈추더니 부드러운 눈으로 짐을 바라보았다.
“근데 네가 진짜 연애란 걸 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했어. 스팍은 너 진짜 많이 생각해, 꼬맹아.”
그러다 문득 그는 눈을 찌푸렸다.
“잠깐만, 너 스팍이 섹스하자는 줄 알고 오케이 했다고? 너 걔 좋아하기는 하냐?”
“걔 내 친구야, 당연히 좋아하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짐은 안 맞아도 되는 주사를 목 뒤에 한 대 맞고 말았다.
“그런 뜻 아닌 거 알지?”
짐은 또다시 글쎄, 하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짐은 의식을 잃었는데 알고 보니 그 주사가 진정제였던 모양이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지만 그 대화는 예상보다 더 오래 짐의 뇌리에 남았다.
짐은 그저 두 번은 하지 않을 원나잇 스탠드라고 생각하고 스팍에게 오케이 했다. 스팍이 무지 섹시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데이트는 좀 다른 문제였다.
짐이 스팍을 그런 식으로 좋아했던가?
짐이 분명히 결론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스팍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지 섹시했다. 스팍은 짐이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기도 했고 기형적으로 강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스팍은 섹시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스팍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짐을 좋아했다. 스팍은 짐이 만났던 사람들과 전혀 다르게 존경과 호의로 짐을 대했다. (비록 호의라는 말은 스팍의 타고난 벌칸스러움을 고려해 엄청 순화한 표현이지만.) 스팍은 어쩌면 짐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짐은 무척이나 그 사랑에 답하고 싶었다. 다만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때 마침 모든 것을 바꿀 일이 일어났다.
“우리 언제 섹스해?”
스팍은 벌칸인지라 체스판에 마시던 차를 뿜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럴 뻔은 했다.
“네?”
“들었으면서. 우리 이 연애...관계라는 거 몇 주째 하고 있는데 거의 만지지도 않잖아. 세상에, 아직 우리 키스도 안했어.”
“저희 이미 수차례 키스했습니다.”
스팍은 컵을 내려놓고 짐의 말을 부정했다. 짐은 눈을 크게 떴다.
“아냐, 안했어. 했으면 내가 알았을 걸.”
“했습니다. 저희가 인간식으로 키스 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만 벌칸 기준으로 저희는-”
“잠깐, 벌칸 키스는 인간 키스랑 달라?”
짐은 스팍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바보, 참 일찍도 알았다.
스팍은 아주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네, 저희 손이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저희가 손가락을 겹치면 애정을 표하는 게 됩니다. 인간식 키스와 꼭 같지는 않지만 벌칸식으로는 키스와 가장 근접합니다.”
그가 두 개의 손가락을 뻗어 짐의 손가락 위에 얹어 보였다.
“허.”
짐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면, 내가 또 알아야 하는 건 없어?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펠라라도 한 건 아니지?”
“안 그러셨습니다. 아직까지 저희는 벌칸 키스만 나눴습니다.”
“알았어. 근데 왜?”
스팍이 아쉬운 듯 체스판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시합을 끝낼 수 없을 터였다.
“저는 저희 관계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관계에서 육체적 측면을 서두름으로써 함장님의 다른 밀회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짐은 다른 사람과 스팍을 자신이 똑같이 취급할 거라는 말에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짐이라면 정말 그 날 바로 섹스까지 했을지도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이 당연한 화도 못 내게 했다.
“내 말 믿어. 너 그 사람들이랑 전혀 달라. 그렇지만... 우리가 나도 모르는 새에 벌칸식으로 그만큼 진도가 나갔다면 인간식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그가 일어나 체스판 위로 기울여 벌칸이라면 아무도 들이지 않을 스팍의 개인 공간까지 다가갔다.
“어때?”
짐이 스팍과 입술을 맞대었을 때 짐에게 전류가 흘렀다. 낯선 감각이었다. 그건 거의 욕망과 비슷했다. 그 감각은 짐 안을 휘저었고, 기분 좋은 따뜻함이 짐을 가득 채웠다.
그는 이 새로운 감각을 분석하느라 바빠서 스팍이 움직여 짐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 이상 둘 사이에 체스판은 없었다. 스팍은 팔을 들어 짐의 허리를 감았고 짐은 헝클어버리고 싶은 스팍의 머리카락에 손을 얽었다. 둘은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는 둘의 행동을 막을 수 없을 욕망이 있었다.
짐은 이렇게 키스한 적이 없었다. 스팍이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은 분명해서 기술이 부족한 건 인정하지만 그 대신 맞닿은 사이로 짐에게 흘러들어오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부족한 기술을 채워주었다. 짐이 기억하기로 이 키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목적이 아닌 순수한 의도로 한 첫 번째 키스였다.
스팍이 먼저 입술을 떼었고 짐은 스팍에게 매달리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스팍의 머리카락은 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로 흐트러졌고 입술은 부풀었다. 그 모습에 짐은 또 다른 격한 욕망으로 가득 찼다.
“오늘은 여기까지. 네 말이 맞아. 서두를 필요는 없지.”
짐은 투덜댔고 스팍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지만 짐은 스팍이 행복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둘은 천천히 연애했다. 정말로 천천히. 사실 짐은 둘이 다음 스킨십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빙하가 녹는 게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짐은 상관없었다. 짐이었다면 애초에 첫 번째 단계도 밟지 못했을 것이다. 약간 섹시하고 진지해질만하면 (짐은 창창한 청소년 때 전체를 통틀어서보다 지난 두 달간 더 자위를 많이 했다. 물론 청소년기에 짐은 그냥 섹스를 했다.) 멈추는 게 불만스럽긴 했지만, 짐에게도 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사실 짐은 스팍 외의 남자랑 진지하게 연애해 본 기억이 없었다. 여자는 좀 달랐는데, 일단 섹스 할 때 적극적으로 할 게 있다는 것도 그렇고, 남자랑은... 가끔 짐은 왜 자기가 이렇게 연연하는지 궁금했다. 섹스는 항상 지루했고 최악의 경우에 정말 아프기만 했다. 짐이 약간 자기 몸 귀한 줄 모르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마조히스트는 아니었다.
그래도 남자들이 좋았다. 남자를 섹시하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짐이 자위할 때 상상하는 건 거의 남자였다. (최근에 그가 상상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지만.) 그래도 짐은 남자와 즐겁게 섹스 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짐은 스팍과의 섹스를 상상하면 흥분은커녕 오히려 초조하고 약간 메스껍기까지 했다. 섹스를 하면 그럴 테니까. 스팍은 짐이 무엇을 겁내는지 알게 될 거고 (접촉 텔레파시에도 단점은 있다.) 분명히 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겠지. 스팍이 가볍다는 말이 아니라 동하지 않는 사람이랑 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삼 개월쯤 지나자 스팍은 마침내 다음으로 논리적인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짐은 며칠간 최선을 다해 백치미 노릇을 하며 스팍이 은근하게 보내는 신호와 진도를 무시했다. 밤새 누가 위로 올라갈지 (평정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스팍이었다. 짐은 바라지도 않았다.) 상의하면서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았지만, 자기가 봐도 짐은 연기를 참 잘했다. 하지만 스팍은 짐에게 와서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 밤 저희는 성교할 겁니다.”
못 알아들은 척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다.
***
= = =
한 번에 다 올리고 싶었는데 나가야해서 일단 여기까지. (절묘한 데에서 끊어보고 싶어서.)
번역이라고 하긴 했는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교정 봐 줄 친구도 없고 아래아 한글이 교정보느라 수고했다. -_-;;;
나중에 후기 추가하면서 다시 교정 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