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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무제 (4)

Neble 2016. 5. 28. 11:04

엔터프라이즈호의 본래 임무인 보급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간 자리에서 스팍의 아내인 트프링은 정세가 불안한 에르겔리우스 2를 떠나고 싶다고 했다. 유전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벌칸의 상황을 모른 체 할 수 없다고도 했다. 트프링이 벌칸의 생태계를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되리란 것은 분명했다. 스팍이 망설이며 제 생각을 밝히자 함장인 짐은 흔쾌히 트프링의 승선을 허락했다. 물론 스타플릿의 기함인 엔터프라이즈호는 갑작스러운 손님 한둘 정도는 거뜬히 감당할 여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러운 손님이 반갑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만 태우는 거 아니었어요?”

 

델타 베가에서 킨저와 단 둘이 보낸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스콧은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논리를 사랑하는 순혈 벌칸인인 트프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승선을 사전에 알리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미안해, 스콧. 혹시 방문객용 선실 전체의 보안 등급을 올려버렸어?”

당연하죠! 개별 선실 하나하나 등급 지정할 시간이 있기나 했어요?”

 

방문객용 선실의 보안 등급을 원상태로 돌리는 일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애초에 스팍의 선실을 2인실로 개조하기로 했던 게 문제였다.

 

며칠만 셋이서 가족실을 쓰면...”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처음 만날 때부터 거의 남 같았던 스팍과 트프링이 모처럼 잘 맞는 한 팀이 되어 짐의 말을 잘랐다. 짐은 스팍의 선실을 개조하는 동안 세 사람이 가족실을 쓰는 것이 누가 봐도 합리적이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물론 우후라와 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불과 얼마 전인데, 아무리 아내라고 해도 스팍이 금세 다른 여자와 한 방을 쓰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애초에 애 딸린 유부남인 주제에 연애를 한 스팍이...

 

제 반려도 아닌 사람과 한 방에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트프링의 말에 짐이 생각을 멈췄다. 이건 무슨 소리야. 자신이 할 말은 그것뿐이라는 듯 입을 꾹 다문 트프링의 모습에 짐이 스팍을 쳐다보려는데 문득 엔터프라이즈호에 도착해서 여태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벌칸인답게 표정이 없는 듯 하지만 어쩐지 짐의 눈에는 아이의 불안한 속내가 훤히 보였다. 짐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두고 우주로 향하는 게 싫었다. 떠나기 전 삼촌과 자신의 거취를 두고 싸우는 게 싫었다. 마지못해 절 받아준 삼촌은 자신을 무관심하게 방치하면서도 그게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어머니가 늘 우울한 표정으로 우주를 떠나는 것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전부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쳐다보고 있으려니 스팍의 아이라고 하지 않았어도 스팍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만큼 닮은 구석이 많았다. 언제나 당당한 스팍과 달리 수줍은 모습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럼 선실을 개조하는 동안 스팍이 내 선실에서 지내도록 해. 내가 근무조를 감마조로 바꾸면 서로 마주칠 일이 없으니 나랑 선실 공유하는 게 불편하지도 않을 거야. 보급 임무도 끝나서 특별한 임무도 없으니 바로 신 벌칸으로 향하는 걸로 하지. 그 동안만이라도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주면 좋겠군.”

 

차가운 짐의 목소리에 붕 떠 있던 전송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새로운 손님을 구경하느라 잠시 제 임무지를 이탈했던 선원들은 급한 일이 생각난 듯 허겁지겁 돌아갔고, 전송실을 지키는 선원들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맥코이조차 놀라서 짐을 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짐의 시선은 오로지 아이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아이의 눈이 살짝 커진 모습에 짐이 배시시 웃었다.

 

이래봬도 내가 대장이거든. 놀라기는. 넌 이름이 뭐야?”

, 맞다. 안녕하세요. 사사야라고 합니다.”

 

그 이름에 짐은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사전 회의 때 맥코이가 보였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트프링의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기에 스팍을 돌아보았다.

 

함장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짐은 아무 말도 안 했구만 맞긴 뭐가 맞아!”

 

맥코이가 버럭 화를 냈다. 스팍과 짐 사이에 있으면 자신이 늘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사야가 스팍의 유전자를 통해 복제된 아이라는 거?”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너희 둘이 뭐 텔레파시라도 통하냐?”

 

그 말에 트프링과 사사야가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짐을 쳐다보았다. 짐은 두 사람의 시선에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맥코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로 했다.

 

이름이 너무 적나라하잖아.”

사사야(Sa’asaya)는 벌칸어로 사본을 뜻합니다.”

 

스팍이 적절하게 설명을 덧붙이자 맥코이는 납득하면서도 구겨진 얼굴을 펴지 않았다.

 

역시 너희 둘 수상해.”

헛소리 말고, 언제까지 손님을 여기 세워둘 거야? 건강 검진을 해야 된다고 굳이 전송실까지 쫓아와놓고. 얼른 의무실로 안내 해. 두 사람도 쉬어야 하니까. 이런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건강 검진을 하고 계시면 선실로 안내할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짐은 정중한 인사로 두 사람을 배웅했다. 사사야가 돌아보자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아이는 어깨를 움찔하고는 얼른 맥코이의 뒤를 따랐고, 스팍은 그런 함장의 모습이 낯설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이를 좋아하셨습니까?”

그런 건 아닌데, 쟤는 꽤 마음에 들어.”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스팍은 귀가 뜨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사야만 하던 시절 스팍은 또래들 사이에서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본래 무인 행성이었던 에르겔리우스 2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다양한 종족이 어울려 살고 있었다. 에르겔리우스 2에서 혼혈은 발에 채이고도 많을 만큼 흔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벌칸인과 다를 바 없는 사사야는 벌칸인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멸당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의 이름을 성의 없이 짓기는 했지만,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상처를 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스팍은 트프링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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