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과 이상한 본즈가 나타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꾸밈은 단순했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작은 벽걸이 장식이 걸려있었고 화분에 심어진 진짜 나무에는 금색 공과 은색 공이 매달려 있었다. 스팍은 배경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 지구의 오래된 크리스마스 캐럴인 것을 눈치 챘다.
짙은 색 머리칼을 한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았던 스팍은 갓난아이의 귀가 뾰족한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여자는 배경 음악을 따라 불렀고, 작은 벌칸 갓난아이는 여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스팍이 부르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접니다.”
하지만 여자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저분은 네 목소리를 들을 수도, 널 볼 수도 없어, 스팍.”
“왜지?”
“저분은 그저 과거의 그림자일 뿐이니까. 이 여정에서 네가 보게 될 사람은 그저 그림자일 뿐이야. 아무도 널 보거나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본즈가 설명했다.
“어머니가 무척 젊어 보이시는군.”
“네가 지구에서 처음으로 보낸 크리스마스니까. 네 어머니는 두 달 전에 여기 오셨지.”
“그래서 어머니가 슬퍼 보이는 건가?”
스팍의 질문에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계셔.”
“그럼 아버지를 사랑하셨다는 건가?”
“그래, 그건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네 아버지는 다른 벌칸 여인과 유대를 맺은 적이 있어. 하지만 그녀는 오래 전에 죽었지. 네 아버지는 그렇게 늦게 자네 어머니를 만날 줄 몰랐을 거야.”
“나는 늘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했기를 바랐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으셨네.”
스팍이 털어놓았다.
“스팍.”
스팍의 어머니가 갓난아이의 작은 손을 쥐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같이 크리스마스 캐럴 부르자.”
그녀가 웃었다.
“꼬마 벌칸인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건 정말 귀여울 거야.”
“너 정말 귀여운 도깨비였구나.”
스팍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신경 꺼.”
본즈가 스팍의 어머니를 보며 미소 지었다.
“또 다른 크리스마스를 보러 가자.”
입자가 부서지더니 갑자기 둘은 다른 곳으로 전송되었다.
스팍은 그곳이 자신이 처음 다닌 학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결국 스팍의 어머니는 스팍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도와주는 벌칸인과 함께 집에서 스팍을 가르쳤지만, 처음에는 스팍이 인간과 어울리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여기는 아니야.”
스팍이 급히 입을 열었다.
“뭐가 문제야, 스팍?”
“난 이곳이 싫어. 이곳… 사람들은 날 받아들이지 않았네.”
“보자고.”
둘은 학교로 들어가 교실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금발 머리의 여자 선생님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 놓인 미술 숙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선 것이 여섯 살 먹은 인간 혼혈 벌칸인이라는 것을 스팍은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스팍. 기대 이상인 걸. 내가 가르치면서 본 크리스마스트리 중에서 가장 예뻐. 이건 정말 작품이야.”
본즈가 가까이 다가가 종이로 만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내려다보았다. 스팍도 그 트리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 날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잘 만들었는데, 스팍. 멋져.”
본즈가 입을 열었다.
“만드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지.”
스팍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자랑스러운 결과물이었지. 벌칸인들은 보통 자부심을 느끼려하지 않네. 자부심이라는 건 틀릴 때도 많고, 바뀔 때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건… 이건 나도 자랑스러웠네.”
“이걸 어떻게 할 거니, 스팍?”
“어머니께 선물로 드릴 겁니다.”
선생님이 물어보자 어린 소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다. 얼른 집에 가, 스팍. 크리스마스 잘 보내렴.”
어린 스팍은 제가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교실을 나섰다. 스팍과 본즈도 그를 따라 학교 밖으로 나갔다. 인간 소년 셋이 스팍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팍은 아주 오래전 그날과 꼭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스팍은 자신에게 이미 끝난 일이라고 되뇌었다. 지금 보이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더 이상은.
“이게 누구야.”
그 중 대장 격인 소년이 말을 걸었다.
“이상한 잡종 꼬마잖아.”
“그거 뭐야, 잡종?”
다른 소년이 어린 스팍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어린 스팍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등 뒤에 감췄다.
“아무 것도 아니긴. 좀 보자. 내놔.”
첫 번째 소년이 스팍을 밀쳤다.
“싫어.”
“당장 내놓으라고!”
세 번째 소년이 꼬마 스팍 뒤로 돌아가 손에서 트리를 빼앗았다.
“내가 빼앗았어!”
“돌려줘.”
스팍의 요구에도 소년들은 스팍이 만든 트리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못생겼다.”
트리를 빼앗은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잡종이 만들어서 그런 거야.”
대장 격인 소년의 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소년이 말했다.
“이제 가자. 재미없다.”
“그래.”
대장 격의 소년이 스팍이 만든 트리를 반으로 찢어 땅바닥에 버리더니 진흙발로 짓밟았다. 그 소년이 등을 돌렸고 셋은 망가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내려다보는 어린 스팍을 내버려둔 채 뛰어갔다.
“속상했겠다, 스팍.”
지금 스팍을 바라보는 본즈의 눈은 견디기 힘들만큼 다정했다.
“상관없는 일이야.”
스팍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린 스팍이 망가진 크리스마스트리를 집어서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두 사람은 어린 스팍이 얼굴을 닦고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어린 스팍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전보다 더 큰 아파트까지 따라갔다.
스팍의 어머니가 웃으며 스팍을 맞이했다.
“왔구나! 지금 막 생강과자 반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전 생강과자 만들고 싶지 않아요.”
“싫- 싫으니?”
“네. 크리스마스 캐롤도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전 크리스마스가 싫어요.”
스팍의 엄마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왜?”
“벌칸인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어린 벌칸인 소년이 고집을 부렸다.
“그렇구나. 무슨 일 있었니, 스팍?”
“아닙니다. 전 그냥 크리스마스가 싫어요. 저는 벌칸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인간들만 기념하는 겁니다.”
“그래. 그럼 우리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말자.”
어린 스팍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씻겠습니다.”
어린 스팍이 방으로 들어가자 스팍의 엄마가 부엌으로 가서 생강과자 반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스팍이 초조해했다.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네.”
“스팍, 지금 여기는 떠나도 되지만 네가 볼 게 아직 더 남았어. 에너자이즈.”
본즈가 스팍을 데리고 간 곳은 낯선 곳이었다. 이번에는 춥고 눈이 내린 곳이었는데 농가로 보이는 이상한 집 한 채가 보였다.
“여긴 어디지? 난 이런 곳을 모르네.”
“이것도 과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과거지. 네가 봐야 해. 따라와.”
두 사람이 농가로 들어가 보니, 바닥에는 트리 장식이 부서져 널브러져 있고, 쓰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지저분한 옷을 입은 남자와 방금 두 사람이 방문했던 곳에 있던 스팍과 비슷한 또래의 어린 금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눈은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짐? 이 소년은 제임스 커크인가?”
“그래. 얘가 짐이야.”
스팍이 본즈를 돌아보자 본즈가 조용히 대답했다.
본즈도 짐을 아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커크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지?”
본즈가 한숨을 쉬었다.
“엄청나게 상관있어. 그냥 봐.”
“네가 한 짓을 보라고! 네가 트리를 쓰러뜨렸잖아.”
남자가 짐에게 소리쳤다.
“그- 근데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아저씨가 하셨죠.”
짐이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저씨가 취해서 트리를 쳤잖아요.”
“치긴 해야겠다.”
남자가 험악하게 말하고는 손을 휘둘러 손등으로 짐의 얼굴을 쳤다.
스팍이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스팍, 말했지만 이건 이미 지나간 일의 그림자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남자가 다시 세게 짐을 치자, 짐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입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스팍은 견딜 수가 없었다. 스팍은 이 남자가 누구든 이 남자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이 남자는 누구지?”
“프랭크라고, 짐의 양아버지야.”
“살아 있나?”
“자네 시간대에? 그럴 걸.”
“내 시간대?”
본즈가 스스로를 가리켰다.
“미래에서 왔다니까, 스팍. 집중해. 계속 보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 당장 이거 치워! 빌어먹을 트리는 내다 버릴 거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잖아요.”
짐이 반발했다.
“빌어먹을 크리스마스 따위 알 게 뭐냐? 이제 철 좀 들어. 이거 당장 치워. 그 주둥이 때문에 선물도 못 받을 줄 알아.”
남자가 크리스마스트리 줄기를 잡고 집 밖으로 들고 나가면서 더 많은 트리 장식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얼굴을 적셨고, 그 순간 스팍은 다른 무엇보다 그 소년을 달래주고 싶었다. 소년을 끌어안고 프랭크 같은 잔학무도한 인간들이 다시는 짐을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무 힘든 상황에 있는 짐에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팍이 본즈를 바라보니 본즈는 눈시울을 훔치고 있었다.
“이리 와, 스팍. 아직 볼 게 남았어. 에너자이즈.”
안타깝게도 스팍은 다음 장소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곳은 칠 년 전 어머니가 계시던 병원이었고, 의식 없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스팍이 서 있었다.
의사 하나가 스팍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뇌출혈이 또 있었습니다, 스팍 씨. 이번 뇌출혈로 뇌 기능이 정지한 것 같습니다. 생명 유지 장치가 아니면 돌아가셨을 거예요. 스팍 씨만 허가하시면 내일 생명 유지 장치를 떼겠습니다.”
“내일 말입니까? 왜 오늘은 안 됩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래서 내일까지 기다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사랑하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죽는 걸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요.”
스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나 제 동족에게는 의미 없는 날입니다. 어머니께서 회복하시지 않는다면 계속 이렇게 힘들어 하시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의료진을 부르겠습니다.”
의사가 문 밖으로 나가자 스팍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손에 입을 맞췄다.
“이러니 크리스마스가 무척이나 싫겠군.”
본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시든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야. 크리스마스 자체는 큰 의미가 없어.”
원치 않는 감정에 목이 메어 스팍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난 어머니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큰 의미인 줄 몰랐네.”
“갈 데가 한 곳 더 있어, 스팍. 따라와.”
이번에 두 사람이 간 곳은 작은 원룸 아파트였다. 구석에 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그 아래에 반짝이는 붉은 포장지로 싸인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여긴 어디지?”
“짐의 아파트야.”
“언제인가?”
“아까 네가 짐의 초대를 거절 하고 나서지.”
“하지만… 이것도 과거인가?”
“가까운 과거지만, 뭐, 이것도 이미 일어난 일이고 네가 봐야 하니까.”
아파트 문이 갑자기 쿵 하고 열리더니 생도복을 입은 짐 커크가 들어왔다. 짐의 얼굴은 빨갛고 머리는 헝클어진데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미쳤지.”
짐이 다시 문을 쿵 닫으면서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스팍 교관님이 왜 나랑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겠어? 아니 뭐 언제는 같이 보내나? 미쳤어, 등신. 누가 나랑 같이 있고 싶어 한다고.”
짐이 작은 트리 옆에 무릎을 꿇었다. 짐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흔들리는 어깨에 스팍은 짐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자신 때문에. 스팍 때문에 짐이 울고 있다. 짐이 우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 주고 싶었던 스팍 자신이 잔인한 사람이었다.
고개를 겨우 든 짐은 사나운 눈으로 트리를 바라보았다.
“또 빌어먹을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겠네. 이것도 필요 없겠어.”
짐이 일어나 트리를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여전히 우는 짐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더니 짐이 붉은 상자를 집어 들고 바라보았다.
“젠장, 난 진짜 멍청이야.”
짐이 그 상자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더니 찬장에서 위스키 병을 꺼냈다.
스팍이 쓰레기통에 던져진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제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제 가슴을 조이는 고통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견딜 수가 없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정신을 차려보니 스팍은 여전히 제 아파트에 있는 명상실에 있었고 본즈의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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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코모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들으면서 옮기기엔 내용이... 아하하하...
요즘 엄청난 식곤증 때문에 밥만 먹으면 쏟아져 내리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저녁 먹자마자 잤더니 새벽에 깨버렸어요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