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이 익숙한 휴식공간인 제 아파트로 돌아왔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스팍은 오랫동안 억눌러오던 다정함, 슬픔, 보호본능, 애정 같은 감정들로 여전히 괴로웠다.
이 이상한 방문 이후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짐의 양아버지가 다시 짐을 상처준 일은 없다고 봐도 되리라.
스팍은 명상 매트에 앉아 식당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이상한 환각을 본 건지 아니면 자신이 본 것이 진짜인지 계속 생각했다. 자신이 어릴 때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와 얽힌 일은 꼭 그랬던 게 사실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전송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본즈가 또 다시 스팍 앞에 나타났다. 지난번에 나타났을 때 본즈는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겉에는 가죽 재킷을 입었더랬다. 지금 본즈는 소매에 줄이 있는 푸른 제복 티셔츠에 검은 바지, 그리고 부츠를 신고 있었다.
“자네는 스타플릿 대원인가?”
“맞아. 레오나드 맥코이라고 해.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의료 총책임자지.”
“내가 아는 엔터프라이즈호 말인가?”
“맞아. 자네는 일등 항해사야. 아직은 아니려나.”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일어나서 따라와. 보여줄 테니.”
스팍은 본즈를 따라갈지 말지 잘 모르겠다고 실랑이를 하느니 본즈를 따라가는 게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팍이 일어나 본즈 옆에 섰고, 본즈는 다시 말했다.
“에너자이즈.”
스팍은 지금보다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지 않는 자신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늘씬하고 매력적인 흑인 여성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길이가 짧은 스타플릿의 붉은 원피스 제복을 입은 여자는 스팍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니요타 우후라라고, 이 시간대의 자네 연인이야.”
“뭐라고? 내가 왜 짐 커크가 아닌 이 여자랑 사귄다는 건가?”
본즈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스팍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냐? 내가 아는 과거에서 너는 짐이 애정을 표시하면 다 거절했었어.”
스팍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 실수가 있었으리라.
“듣기나 해.”
본즈가 말했다.
“정말 방에 크리스마스트리 안 둘 거예요?”
우후라라는 여자가 물었다.
“알다시피 나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아, 니요타.”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당신 마음이 바뀔 거라는 희망을 버리진 않았었는데.”
스팍이 보니 확실히 미래라서인지 과거 생도였던 짐 커크는 이제 명백히 함장을 나타내는 줄무늬가 달린 금빛 제복 셔츠를 입고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래의 스팍 자신과 여자가 있는 방향을 향해 짐이 걸어왔지만 두 사람은 짐을 못 본 듯 했다.
짐은 풀이 죽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이라면 스팍은 짐에게 가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저 여자가 아니라 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원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팍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천천히 짐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자 스팍은 제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왜 이런 걸 보여주는 건가?”
스팍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야 때가 되면 네가 뭘 내팽개친 건지 알게 될 테니까.”
본즈의 말은 불길했다.
“나한테 이 일은 과거야, 너한테는 미래고. 따라와, 아직 더 남았어.”
이번에는 짐과 본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본즈는 지금 스팍과 함께 있는 남자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 방에 본즈가 두 명이고, 짐과 말을 하는 건 자신과 함께 있는 본즈가 아니라는 걸 스팍이 깨닫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스팍이 우후라랑 헤어졌대.”
짐이 본즈에게 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커피 잔이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내가 들은 거랑 다르네. 우후라가 스팍을 찼다던데. 감정 고자라면서.”
“스팍 불쌍해.”
본즈가 코웃음을 쳤다.
“스팍이 불쌍해? 그 도깨비가 감정 고자인 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너 몇 년째 걔 짝사랑 하고 있냐?”
앞에 놓인 커피를 내려다보는 짐의 눈이 슬펐다.
“평생인 것 같아. 느낌이. 내가 일개 생도였을 때부터 사랑했으니까.”
“그래, 그러시겠지. 난 우후라가 스팍이랑 그렇게 오래 사귄 게 놀랍다.”
짐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마음을 직접 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짐, 스팍도 너랑 같은 마음이었더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걸 바라나본데, 그럴 일 없어. 스팍이 네 마음 몰랐던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을 택했잖아. 짐, 잔인하게 굴려는 거 아니야. 사랑해. 그래도 스팍이랑 너는 안 돼.”
“그래, 네 말이 맞아.”
스팍이 제 옆에 선 본즈에게 눈을 부라렸다.
“저런 말을 했나?”
“짐이 다치지 말라고 그랬다, 왜.”
“짐이 고백하게 뒀어야지.”
“그럼 뭐가 달라졌을 것 같아?”
본즈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넌 짐을 완전히 거부했어, 스팍. 짐만 생각하면 감정이 넘쳐나니까 그게 싫었던 거야. 그래서 너희 둘 다 망가져버렸지.”
“그게 무슨 소린가?”
본즈의 턱 근육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보여줄게.”
갑자기 두 사람은 함선을 벗어나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스팍은 두 사람이 스타플릿 본부에서 멀지 않은 근사한 호텔 밖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 옆에 선 본즈가 긴장했다. 본즈는 완전히 태도를 바꿔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꽤 초조해했다.
“왜 그러는 거지?”
본즈는 불안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에 스팍도 긴장이 되었다.
“여긴 어딘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오 년 임무가 끝나고 샌프란시스코에 왔어. 짐이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려는 참이야.”
“그리고?”
본즈가 숨을 내쉬더니 양 손을 주먹 쥐었다.
“보기나 해.”
둘은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에는 3미터가 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고 오른쪽은 바였다. 스팍은 짐이 본즈와 함께 바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짐은 그의 양아버지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망가뜨리고 얼굴을 때렸을 때만큼이나 슬퍼보였다.
“믿을 수가 없어.”
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힘내.”
“콜리나르를 하러 벌칸에 간다고?”
“난 그 도깨비 절대 이해 못하는 거 알지.”
“말해야겠어.”
“말한다고?”
본즈가 인상을 썼다.
“말할 거야.”
짐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와서 벌칸에 간다고 말해놓고 나더러 그냥 내버려두길 바라면 안 되는 거야. 아, 그래, 잘 됐다. 본즈, 나 내 마음 말할 거야.”
“짐―”
“이게 마지막 기회야, 본즈. 저렇게 그냥 보낼 순 없어.”
스팍 옆에 선 본즈는 더욱 불안해했고 스팍은 본즈의 눈이 촉촉한 것도 알아차렸다. 뭔가 아주 안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 것이다. 옆에 선 남자에게서 황량함과 비탄의 물결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
“짐, 기다려―”
하지만 짐은 바를 뛰어나가 호텔 밖으로 빠져나갔다. 본즈는 바에 앉아 있었다. 스팍은 이곳에 남아있기보다 짐을 보고 싶었다.
“짐을 따라가겠어.”
스팍이 몸을 돌려 나가면서 자신과 함께 했던 본즈가 바에 앉아있던 본즈에게 합쳐지는 모습을 보았다. 스팍이 호텔을 빠져나와 달렸다.
스팍은 미래의 자신이 서서 짐과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았다. 둘은 거의 도로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짐의 손은 스팍의 팔에 얹어져 있었다. 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스팍이 더욱 다가갔다.
“스팍, 제발. 기회만이라도 준다면 너도 아마 나처럼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응?”
“제가 사랑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당신은 제게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지 못할 겁니다.”
스팍이 쌀쌀맞게 대꾸했다.
“그래도 내가 노력하면―”
“아닙니다.”
스팍이 짐의 손과 멀어져 도로 위로 내려섰다.
“저는 당신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짐이 고개를 가로젓는데 스팍은 짐의 눈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보았다.
“스팍, 나와!”
미래의 스팍은 멍하니 보기만 했다.
“네?”
“뭐가… 움직인다고!”
짐이 갑자기 미래의 스팍에게 몸을 기울여 스팍이 서 있던 자리에서 비켜야 할 정도로 세게 밀어냈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감정들, 크나큰 공포와 두려움으로 스팍이 지켜보는 사이, 호버카가 제임스 커크를 치더니 짐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안 돼!”
미래의 자신조차 제가 보는 게 무엇인지 채 알지도 못하는 듯 바닥에 뒤틀린 채 누워있는 짐을 내려다보았고 스팍은 울부짖었다.
갑자기 본즈가 짐 옆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본즈는 미래의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죽었어, 스팍.”
큰 혼란에 빠진 스팍이 미래의 자신을 공격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스팍이 다른 스팍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샌프란시스코의 도로가 사라지고 스팍은 자신이 명상실 바닥에 누워 제 목을 조르고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