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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ity (2)

Neble 2016. 11. 9. 08:15

결혼 휴가만큼은 단둘이 보내고 싶다는 캐롤의 의견을 따라 짐은 호숫가 근처에 있는 독채형 호텔을 예약했다. 임신 후 쉽게 피곤해 하던 캐롤은 금세 잠이 들었다. 짐은 잠든 캐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흐트러진 금발 머리를 정돈하듯 쓰다듬었다. 칸 사건 이후 캐롤은 본래 일하던 연구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광스럽게 사망한 짐의 아버지와 달리, 캐롤의 아버지가 죽은 건 개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그 전말을 전부 지켜본 캐롤은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칸의 혈청으로 살아난 짐도 워프 코어 앞에서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은 몇 개월간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상담실을 오가며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함께 보내며 몸을 섞기도 했다.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남녀 공히 피임약 사용이 흔한 시대였다. 칸의 혈청으로 바뀐 체질 때문에 상용하던 피임약이 듣지 않게 된 짐과 우울증 때문에 피임약 복용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캐롤 누구도 서로를 원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민하던 캐롤이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편모 가정에서 외롭게 자랐던 짐이 청혼을 했다. 뜨겁게 두근거리는 사랑을 줄 자신은 없지만, 가족으로서 애틋하게 아낄 수는 있다고 했다. 좋은 남편은 되지 못하겠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공동 육아 파트너십을 맺자고 제안한 건 눈치가 빠른 캐롤이었다. 두 사람에게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 그래서 짐은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사라진 행성 벌칸의 보카야 목걸이를 보고 쓴웃음을 짓는 일도 줄어들었다. 가끔은 캐롤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원망스럽다는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스팍을 볼 때마다 차라리 자신의 마음이 식어 버리길 바랐다.

 

계속 그러고 있었어?”

 

캐롤의 목소리에 짐이 눈을 깜박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창밖은 벌써 어둑어둑했다. 짐이 캐롤의 머리맡에 놓인 제 손을 거뒀다. 어깨가 조금 욱신거렸다.

 

그랬나봐.”

경치라도 구경하지 그랬어.”

그러게. 내일 보지, . 시간도 많은데. 배 안 고파?”

조금?”

 

캐롤이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켰다. 짐은 자연스레 손을 뻗어 캐롤을 도왔다. 캐롤이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짐도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호텔에서 먹자.”

좋은 생각이야.”

 

주로 지상 근무를 했던 캐롤은 유난히 함선 음식을 지겨워했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해야 했던 짐은 남이 해 주는 음식이라면 다 좋아하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 캐롤이 식당으로 안내하고 짐은 별다른 말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게 두 사람의 데이트라면 데이트였다. 어린 나이에 함장이 된 짐은 캐롤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만 다니는 게 싫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보기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만족한 듯한 캐롤의 미소에 짐은 묵묵히 접시를 비웠다.

 

- - -

 

함장보다 휴가가 짧은 선원들의 일과를 책임지고 감독하는 건 휴가를 받지 않은 스팍의 일이었다. 함장의 휴가로 선원들의 근무량이 줄어든 덕분에 함선이 운항 중이었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스팍도 여유가 있었다. 연일 보도되는 함장 부부의 신혼여행은 평범했다.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경치 좋은 곳을 산책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진이 찍히는가 하면, 함장 혼자 걷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찐 보셨씀미까? 요쯤 함짱님 믓있씀미다.”

함장님은 언제나 멋있는 분입니다.”

아님미다. 쫌 다름미다.”

 

함교 선원들은 함께 식사를 할 때가 많았다. 체콥은 식당에서 가장 널찍한 식탁에 앉아 호들갑스레 함장의 이야기를 했다. 함장만큼은 아니어도 함교 선원들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원들을 스팍의 눈치를 보며 함교 선원들을 흘끔거렸다.

 

그 멍청이가 멋있다니, 도대체 뭘 보고 그러는 거야?”

 

식판을 들고 등장한 맥코이의 발언에 스팍이 눈썹 하나를 들어 올렸다.

 

설마 함장님을 멍청이라고 하신 겁니까?”

, 아니꼽습니까?”

상관을 지칭하기엔 부적절한 호칭입니다.”

난 짐을 친구로 안 시간이 더 길거든요? 내가 멍청이를 멍청이라고 하겠다는데 왜 시비예요?”

 

스팍과 맥코이의 시시한 말싸움에 주변에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체콥도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맥코이에게 전자패드를 꺼내 보였다. 이른 아침 호숫가를 배경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짐의 사진이었다. 푸른 눈과 호수가 함께 어우러져 그럴싸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다들 오, 하며 감탄하는 중에 맥코이는 혀를 찼고, 스팍은 숨을 멈췄다.

 

새벽부터 호숫가 산책이라니. 신혼여행인데 우리 함장님은 체력도 좋아.”

캐롤 대위가 임신 중이잖아.”

, 그런가?”

 

선원들끼리 키득대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스팍은 다 비우지 않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내일 함교에서 봅시다.”

 

벌칸인의 표정을 읽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원들은 벌칸인 부함장의 심기를 읽을 줄 알았다. 친구라지만 대놓고 상관을 멍청이라고 한 맥코이부터 함장의 침대 사정을 놓고 낄낄거린 선원들까지 스팍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후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아하게 인공 야채로 만든 샐러드를 씹어 삼켰다.

 

확실히, 바보 같긴 하지만 멋있긴 하네요.”

역시 므시쬬?”

그래봤자 멍청이라니까.”

 

체콥과 본즈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자 스팍이 없는 식탁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 - -

 

스팍은 욕실에서 얼마 먹지도 않은 음식을 게워냈다. 아무래도 식사 시간에 겪은 불쾌한 감정이 소화 능력에 영향을 끼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벌칸인답지 않은 일이었다. 최근 들어 감정에 영향을 받는 일이 늘었다. 스팍이 샤워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한 이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벌칸 행성이 사라졌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또 다른 자신을 만나기도 했다. 존경하던 상사가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현재 자신의 함장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또 다른 자신이 죽은 것도 최근 일이었다. 생사가 위험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고 회복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벌칸인이 아니었다면 정상 근무 자체도 불가능했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양치를 하고 선실로 돌아와 명상을 준비했다. 수석 연구 장교와 일등 항해사라는 두 가지 중책을 겸임하는 스팍에게 모처럼 생긴 여유였다. 명상을 통해 자신을 다잡을 생각이었다. 향초를 켜고 명상용 매트에 앉아 눈을 감자 아까 식당에서 사진으로 봤던 함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팍이 짧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떴다. 휑한 선실벽을 한참 바라보던 스팍은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휴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임시 함장의 휴가를 승인할 수 있는 건 휴가 중인 함장뿐이었다. 명상 도구를 정리하려는데 승인된 휴가 신청서가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함선 시각으로 새벽 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 - -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건강을 위해 이만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짐은 짤막한 스팍의 메시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짐이 전자 패드를 두드려 회신했다.

 

그러는 넌 왜 아직 안 자는데? 벌칸인이라 적게 자도 된다는 말은 됐고, 내가 휴가 승인을 안 해 줬으면 어쩌려고. 원래대로라면 내일 알파 근무잖아.

자려던 참입니다.

근데 갑자기 웬 휴가야?

신청서에 쓰여 있는 대로 개인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궁금하다는 거잖아.

 

스팍은 답이 없었다. 짐은 역시나란 표정으로 일어나 방 안에 놓인 책상 위에 전자 패드를 내려놓았다. 스팍은 자기 일에 관해서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짐도 마찬가지라서 스팍을 다그칠 수도 없었다. 터보 리프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서로에게 하려던 말은 여전히 짐작인 채로 남았다. 스팍과 우후라가 헤어진 이유는 모르지만, 스팍이 먼저 이별을 고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팍은 다가오는 사람을 막지도,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않았다. 스팍이란 별에서 꼭 한 걸음만큼 떨어져 공전하는 위성처럼, 짐은 스팍에게 다가가지도, 스팍에게서 멀어지지도 못했다. 짐은 자신의 아이를 품은 여자가 자고 있는 방에서 다른 이를 생각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 - -
카테고리가 ficlet인데!!! 도입부에 너무 크게 저질러놔서 수습하려면 큰일났음 ㄷㄷㄷ

1. 원래 스팍커크 사이에 제3자 끼는 거 안 좋아하는데 (그래서 3p 싫어함) 캐롤, 미안해 ㅠㅠ
2. 결말은 무조건 해피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해피까지 가려니 갈 길이 너무 멀다.
3. 원래 스팍 삽질 시키려고 쓴 글인데, 이렇게 저렇게 수습하려니까 짐도 같이 삽질을 해야 되네? ㅠㅠㅠㅠ 짐, 미안해 ㅠㅠㅠㅠ

확실한 건, 이렇게 된 원흉은 스팍임. 스팍이 다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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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카테고리명 왜 pot이었냐 ㅋㅋㅋㅋㅋ
노래 가사를 직접 갖다 쓰지 않고 pod ficlet을 쓰느라 사서 고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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