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힘든 임무를 마치고 두 사람이 전송기에서 내려왔다. 커크가 뇌진탕일 확률은 83.6퍼센트였다. 스팍은 갈비뼈가 부러졌다.
두 사람은 남은 기력을 쥐어 짜내서 의무실로 향했다. 스팍은 빈 병상에 앉아 다소나마 품위를 지켰다. 벌칸인이 일반적인 지구인보다 필요 수면 시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스팍은 지쳤다. 함장이 어떻게 의식을 놓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모를 머리 부상을 치료받던 커크는 스팍이 깨어 움직이는 한은 자지 않고 움직일 기세였다.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감탄하며 침대에 눕자마자 커크는 잠이 들었다. 맥코이 박사는 트라이코더로 커크를 진찰하더니 DHE 45라는 주사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다시 주위를 살피던 스팍은 자신을 진찰하던 간호사를 흘깃 바라보았다.
“늑골 골절상이십니다, 중령님.”
“알고 있네.”
늑골을 치료하는 정도는 의료 총 책임자가 신경쓸만한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쯤 지나 통증이 덜 느껴질 때쯤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잘 준비를 했다. 스팍이 의무실을 떠나려던 차에 맥코이가 앞으로 세 시간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커크를 깨웠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스팍은 머리가 베개에 채 닿기도 전에 자신을 잡아당기는 수마(睡魔)를 느꼈다.
...
몇 시간쯤 자고 일어난 덕분에 다음날 두 사람은 훨씬 생기 있는 모습으로 함교 근무를 했다. 전날 밤 방으로 돌아갈 힘도 없었던 커크는 의무실에서 잠을 잤다.
스팍은 자리에서 임무 보고서를 작성했다. 소행성장(場)에 진입하고 있다는 술루의 말에 스팍은 고개를 들었다. 커크는 차분히 소행성을 피해 돌아가라고 명령한 뒤 다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둔 전자패드에 다시 집중했다.
“스팍, 오늘 체스 어때?”
커크는 전자패드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물었다.
“좋습니다.”
“좋았어.”
스팍은 계속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 삼 주간 두 사람은 서로의 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 체스를 두었다. 두 사람이 처음 체스를 두던 날 커크는 벌칸 차에 관심을 보였고, 스팍은 그 다음부터 두 사람 몫의 차를 준비했다. 둘 중 누구도 맥코이 박사를 통해 함장의 방대한 알레르기 목록을 확인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후에 스팍은 커크가 벌칸 차에 알레르기가 없었던 것이 엄청나게 다행스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체스는 일상이 되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차를 대접하고 둘이서 밤늦도록 체스를 두었다. 스팍은 함장과 두는 체스가 편하다고 인정했다. 함장과는 깜짝 놀랄 만큼 말이 잘 통했다.
경보도,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도 없이 무사히 일과가 끝났다. 스팍 생각에 엔터프라이즈호는 참사라고 할 만한 일을 자주 겪는 것 같았다. 이런 참사가 위험을 알아차리는 커크 함장의 능력과 분명히 관계가 있다는 점이 더욱 불안했다. 함장은 마치 위험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았다.
그날 저녁 21시 정각에 스팍의 방에 도착한 커크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와, 완전 피곤해, 스팍. 우리 좀 쉬자’였지만 전혀 놀랍지 않았다.
“우주 항을 떠난 지 고작 2.3개월 밖에 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스팍은 커크 앞에 벌칸 차가 담긴 머그를 내려놓으며 대답했고, 커크는 고마워하며 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훨씬 더 된 것 같아. 그러면서도 지구를 떠난 게 엊그제 같기도 해.”
스팍은 멈칫하더니 커크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두 문장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함장님.”
커크는 손을 뻗어 몇 분 전에 스팍이 준비한 체스 판 위에 놓여있던 폰을 집어 들었다. 커크는 폰을 두 칸 앞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편안히 침묵하며 체스를 두었다. 또 다시 스팍이 승기를 잡았다. 스팍이 가진 체스에 대한 지식은 비전문가 수준인 커크가 가진 관심을 능가하는 듯했다. 보아하니 리버사이드에서 커크와 체스를 두려고 했던 사람은 이름을 물려준 외조부 외에는 별로 없던 모양이었다. 커크에게 체스 두는 법을 알려주었을 때 커크의 외조부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다.
별로 둔 적이 없는 것 치고 함장은 체스를 꽤 잘 두었다. 외조부가 돌아가신 뒤로 스팍과 다시 체스를 두기 전까지 커크는 단 한 번도 체스를 둔 적이 없었다. 어째서인지 스팍은 함장이 체스를 연습 삼아 계속 두기로 한 상대가 자신이라는 게 이상하리만치 영광스러웠다.
삼십분 하고도 사십이 초가 지났을 때 스팍이 빠르게 체크 메이트 위치로 말을 옮기며 체크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