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플릿에 입대한 지 3년, 배움에 전념한 시간 17년에 감정을 빼어나게 통제한 지도 21년이 되었는데 스팍에 대해 어머니가 내린 평가는 그랬다.
스팍이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와 함께 일한 건 고작 삼 년 뿐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변화무쌍했다. (적어도 커크 쪽에선) 순수한 혐오와 좌절, 오해로 시작된 관계였다. 관계가 발전하며 서로의 불일치에 ‘대처하게’ 되었지만 예상대로 좌절과 오해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했는지 스팍도 정확히 짚어내진 못했다.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두 사람에겐 서로의 차이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생겨났다. 둘은 아주 완벽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커크의 직관력은 스팍의 논리와 대조를 이루었고 열정은 민첩한 지능과, 충동적인 성격은 규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원칙과 대조를 이루었다. 둘은 우주선의 완벽한 지휘관들이었고 그 점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호 조화 가능성은 독특한 우정을 만들어 냈다. 둘은 누구보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았고 서로에게 감출 것도 없었다. 둘은 우주선의 내부 구조만큼이나 서로를 잘 알았고, 또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비길 데 없는 유대관계를 형성했으며 둘 사이를 부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기름칠을 해서 완벽하게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레 맞물렸다. 그래서 둘이 함께 있지 않은 모습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스팍이 생각하기에 어머니께서 제 미래의 함장이자 가장 친한 친구를 처음 만나고 스팍과 함께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던 중에 “그에게 전념하고 있구나.”하고 말씀하신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스팍은 자신과 커크는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를 믿어야 하는 일등 항해사와 함장 사이에 꼭 필요한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팍은 부모님이 함께 묵으시는 교정 근처에 있는 호텔로 어머니를 모셔다 드렸다. 샌프란시스코의 불빛은 하늘을 흐릿한 주황색으로 물들이면서 얄궂게도 별빛을 가리고 있었다.
아만다는 스카프로 목을 꼭 감싼 전통 벌칸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만다는 추위라는 것을 잊고 지냈을 테지만 지금 아만다가 있는 곳은 벌칸이 아니었다.
“저희 훈련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함장과 일등 항해사로서 조화를 이뤄야 하니까요.”
“그 말은 맞아.”
아만다가 중얼거렸다. 아만다는 내내 땅을 보고 걸었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도 벌칸에서 오래 살고 또 벌칸인과 결혼까지 한 아만다는 그 미소를 쉬이 떨칠 줄도 알았다.
“이곳에서 잘 성장해서 보기 좋아, 스팍. 그럴 줄이야 알았지만.”
“지지해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어머, 네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난 늘 널 지지한단다, 스팍. 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어.”
어머니 옆에서 뒷짐을 지고 걷던 스팍은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네게 내 지원은 필요 없잖니. 동료나 어른들이 네게 뭘 바라든 너는 늘 네 뜻을 관철시켰잖아. 지금 이 모든 성과는 온전히 네 힘으로 얻어낸 것이고 그래서 엄마는 그게 참 자랑스러워.”
스팍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 칭찬은 인간의 특성이었다. 벌칸인은 빈말이 갖는 가치를 전혀 알지 못했고 그런 말에 반응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네가 여기서 얼마나 잘 해냈는지 보고나니 놀랍다. 학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말이야.”
이 말에는 스팍도 눈썹을 움찔거렸다.
“작은 교정에서 살면서 정해진 사람들과 대부분의 수업을 함께 듣다보면 그러지 않기가... 힘듭니다.”
아만다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스팍 스스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리란 건 알았다. 아만다는 방금 전에 제임스 커크는 물론이고 머리 회전이 빠른 니요타 우후라와 ‘짖긴 해도 물지는 않는’ 본즈 (스팍은 사실 본즈와는 친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용하고 친절한 히카루 술루를 포함한 스팍의 친구 몇 명을 만났다. 제임스 커크는 대단한 친구였다.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도 대단했고 머리도 좋았다. ‘습관처럼 연애하는 사람’이란 스팍의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만다는 스팍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자연스레 제임스 커크 곁으로 가는 것도 눈치 챘다.
아만다는 감정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벌칸에서 수십여 년을 보냈다. 그래서 스팍과 제임스가 대화하고 교제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만다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직업적인 관계를 넘어섰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네 친구들을 보니 정말 기뻤어.”
지구에서 삼 년을 지낸 스팍은 사교적인 대화에도 익숙했다.
“어머니께서 좋게 보시니 저도 기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맥코이 박사는 제가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만다가 싱긋 웃고 말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만다는 자신을 기쁘게 하던 제 아들이 그리웠다.
“너희 둘을 보고 나니 제임스 커크와 네가 왜 잘 맞는 한 쌍인지 알 것 같아.”
스팍이 뚱한 얼굴을 했다.
“그에게 전념하고 있구나.”
이제 스팍은 침대에 누워 명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스팍은 제 어머니의 말을 일일이 곱씹었다. 어머니는 벌칸에서 사셨고 말 속에 은연중에 담긴 뜻을 알아차릴 정도로 벌칸인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기 때문에 우연한 실수로 그런 말을 하실 리가 없었다. 빈틈없는 어머니가 그런 실수를 하실 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과 커크를 ‘잘 맞는 한 쌍’이라고 하시며 자신이 커크에게 ‘전념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스팍이 커크를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을 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등 항해사가 함장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신경을 쓴다는 뜻이었다.
스팍이 아치 모양으로 양 손가락 끝을 맞댄 제 두 손을 얼굴께로 들어올렸다. 명상을 할 때면 흔히 하는 동작이었다. 다만 지금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평소에 명상을 할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팍은 눈을 뜬 채로도 바깥세상에 있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쉽게 차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스팍은 잠을 자는 대신 명상을 할 때도 많았다. 어느 이른 아침에 스팍을 깨우러 와야 했던 커크는 그 모습에 불안해했다. 스팍이 눈을 뜨고 잔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커크가 보인 더 정확한 첫 반응은 이랬다.
“깜짝이야, 으아, 잠깐, 너 눈 뜨고 자는 거야? 그거 진짜 섬뜩하다.”
하지만 지금 스팍은 편안한 장소를 찾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스팍은 감은 눈꺼풀 너머로 되풀이 해 나타나는 커크와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방식은 스팍이 자주 쓰는 방식은 아니었다. 맥코이가 스팍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스팍에게도 상상력은 있었지만 이를 이용하는 것은 벌칸인의 습성이 아니었다.
그에게 전념하고 있구나.
전념한다.
아만다는 헌신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말이었겠지. 아만다는 자신이 은연중에 남긴 어떤 말이든, 스팍이 자각한 것 이상으로 커크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아차릴 만큼 스팍에게 통찰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모든 증거가 그 점을 명백히 가리키고 있었다. 스팍은 그에게 전념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벌칸 혼혈로서 스팍은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 그렇게 된 걸까?
서로에게 실망하던 것이 우정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스팍은 제 감정이 무언가 더 큰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 시점도 기억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감정은 무엇일까?
전념한다는 말은 자신이 처음 알아차린 것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이었다. 헌신한다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팍이 얼굴을 찌푸렸다.
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였을까? 그는 정말 짜증나고 모순적이며 감정 변화가 심하고 종잡을 수 없는데다 종종 비합리적이고 경솔하며 지기 싫어하고 따지길 좋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정심이 많았다. 그는 친절했고 영리하며 통찰력도 있고 이해심도 많은데다 유쾌하고 의지가 강하며 어린애처럼 기대도 잘 하고 복잡하며... 흥미롭고...
스팍이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이 문제는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상황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자 패드가 울리는 소리에 생각이 멈췄다. 스팍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 전자 패드를 들고 책상 모서리에 기댔다. 커크에게서 온 문자였다. 스팍은 커크가 파티에 가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안녕 스픅ㅏ 네가 정ㄹ맣ㄹ좋은친구라곰ㄹ허려고어디애ㅑ?????
걱정으로 스팍이 눈썹을 찡그렸다. 커크가 술에 취해 문자를 보내는 일은 익숙했다. 다음 날이면 커크는 그런 문자를 보냈음에 민망해하며 늘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늘 반복됐다.
스팍은 커크의 호기심을 간단히 만족시킬 생각에 한 단어 남짓한 문자를 보내곤 했다.
내 방
회신을 하고도 스팍은 전자 패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스팍은 곧 다른 문자를 받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내가가도됴ㅐ
스팍이 인상을 썼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맞춤법 상태도 평소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흡수한 술의 양이 얼마나 되지?
스팍이 전자 패드를 손에 들고 방 안을 서성였다. 제임스 커크는 스팍이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스팍을 걱정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문자 사이의 간격이 평소보다 길었다.
짐?
스팍이 멈추고 기다렸다.
어ㅓㅓㅓ 핳하하하하하하핳ㅎ하하
스팍은 이 문자를 술을 많이 마셨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내가 데리러 가지. 지금 어디에 있나?
내삳지슴가ㅣㄹ게
스팍은 술에 취한 스타플릿 예정자의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다. 클링온 어, 안다리아 어, 텔라리아 어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제임스 커크의 언어는 해석할 수 없었다.
거기 있으라고 말하고 싶군.
아라써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
스팍은 ☹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짐이 깨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어디에 있지?
스팍은 제 방 바깥에서 귀가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자 패드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33분이었다. 그렇게 오래 명상을 한 줄도 몰랐다. 짐이 그런 상태인 것도 당연했다.
흠ㅁㅁㅁㅁㅁㅁㅁㅁ 공기역학 싱허묘실비ㅏㄱ
한 문장에서 어떻게 ‘공기역학’이란 단어 말고는 다 틀릴 수 있는지 스팍은 알 길이 없었다.
스팍은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학생 몇을 급히 피해야 했지만 그런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공기역학 실험실은 걸어서 오 분이면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 더미가 인도를 밝게 비췄고 걸어가는 동안 스팍의 그림자는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그 모습에 스팍은 얼마 전에 제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연구실 바깥 계단에 누워있는 짐을 보자 곧 정신이 들었다. 짐은 밤새 거기서 잠을 잘 것처럼 누워 있었다. 스팍이 다가가보니 사실 짐이 잠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짐.”
커크는 입을 살짝 벌리고 딱딱한 돌 대신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짐은 대답이 없었다.
“짐.”
스팍이 좀 더 단호하게 불렀다.
짐이 찡그린 눈으로 스팍을 찾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짐의 두 눈은 겨우 스팍을 발견했다.
“어, 네가 날 찾았네!”
“네 문자를 해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
“아, 그래.”
짐이 말꼬리를 늘였다. 짐이 인상을 쓰며 불만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주머니를 뒤졌다.
“내 전자 패드는... 어디 간 거지...”
스팍이 짐 바로 옆에 놓인 전자 패드를 집어 들었다.
“지금은 이건 내가 들고 있도록 하지.”
“흠푸.”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흠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짐이 몹시 선명하고 파란 눈으로 스팍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흐려지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었다. 술에 취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눈동자는 날카롭고 강렬했다. 하지만 짐의 표정은 슬픈 어린아이 같았다.
“네 방에 가도 돼?”
스팍은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상대가 짐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스팍은 짐에게 헌신했다.
“걸을 수 있나?”
“프, 당연하지, 그렇게 취한 건 아니야.”
그 말에 스팍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짐이 계단 모서리를 짚으며 천천히 두 발로 섰다. 짐은 걱정스러울 만큼 휘청거렸다. 계단에서 손을 때고 똑바로 일어서려던 순간 짐이 발을 뒤로 헛디디며 주저 앉아 버렸다.
“으, 내가 다시 일어날게.”
스팍이 짐에게 팔짱을 끼며 일으켜 세웠다.
“아니. 네가 다치는 걸 두고 볼 순 없어.”
짐이 코웃음을 치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아픈 줄도 모를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짐은 스팍에게 잘 기댄 채 잠시 걸었다. 느렸지만 걷고 있었다. 짐이 평소보다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보니, 짐의 다리도 멈춰 있었다.
짐은 잠이 들었고 크게 코도 골았다.
“짐.”
스팍이 엄한 소리로 불렀다.
“흐음.”
“내 방에 돌아갈 때까지는 정신을 차리려고 해야지.”
“흐음.”
만족할만한 대답이 아니었다.
스팍이 불만에 찬 한숨을 쉬었다. 스팍은 화가 났다. 스팍은 지금 어쩌다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을 짐짝처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 사람이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술에 너무 취해서.
“으아, 왜 다 뒤집힌 거야?”
“내가 널 어깨에 매고 있기 때문이지.”
스팍이 참을성 있게 대답해 주었다.
“왜? 나는... 나는 괜찮은데...”
“네가 서서 잠이 들었어.”
“뭐어? 아니... 우와, 스팍!”
“그래, 짐.”
“네 엉덩이 정말 멋지다.”
스팍이 인상을 썼다가 얼굴을 붉혔다. 스팍이 민망했다고 말할만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을 것이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다시 자도 괜찮아.”
스팍이 술에 취해 킥킥대는 미래의 함장을 기숙사에 있는 제 방으로 짊어 메고 오는 동안 몇몇이 이상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스코티가 위스키라는 엄청난 술을 줬거든... 이제, 이제 스코틀랜드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술이래. 그런데 예전엔 정말 유명해서,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을 정도인가 봐...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아.”
“그렇군.”
스팍이 제 방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짐이 머리를 방문 틀에 찧지 않도록 조심했다. 머리가 다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 있었다. 스팍은 어깨에서 짐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짐은 침대에 위험하고 투박하게 떨어져서 팔다리를 널브러뜨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건 아주 곤란한 일이었다. 짐을 겨우 안전하게 침대에 눕힌 스팍은 짐이 곧 잠이 들겠다고 생각했다.
스팍이 전자 패드를 확인했다.
젠장 잠깐 눈을 뗀 것뿐인데 이 자식이 급히 도망치는 토끼처럼 사라져버렸어
레오나드 맥코이 박사에게서 온 문자였다. 스팍이 맥코이를 칭찬하는 한 가지는 그가 짐을 많이 신경 쓴다는 점이었다.
짐은 지금 내 기숙사에 쓰러져 있네. 의료 처치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지만 내일 아침엔 찾을지도 모르겠군.
금방 회신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내가 내일 그 놈 숙취까지 챙겨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만약 그런다면 그 놈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어떻게 되나 볼 거야
스팍은 그렇게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짐을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스팍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자 패드를 책상에 올려놓은 스팍은 물을 가지러 갔다. 제공할만한 음식은 없었지만 적어도 수분 보충은 해 줄 수 있었다. 싱크대에서 물을 한 잔 받은 스팍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피곤한 모습이었다. 스팍도 잠을 자야 했다. 최근에 스팍은 잠을 푹 잘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평소엔 낮은 수준의 감정적 싸움이 외부 요인에 의해 고조되어 있었다.
짐이 침대 전체를 차지했기 때문에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건 확실했다.
스팍이 한숨을 쉬고 돌아와 제 침대 옆에 잔을 내려놓았다. 물을 마시라고 짐을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자게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팍.”
스팍이 놀라서 짐을 내려다보았다.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짐.”
“내가 네 침대를 다 차지할 줄 알아? 이리 와.”
짐이 꼼지락대며 왼쪽으로 가더니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리 와.”
짐이 또 한 번 재촉했다. 스팍은 망설였다.
“네가 편히 쉬려면...”
“으, 괜찮아. 여긴 네 방이잖아.”
“그런데 난 지금 너한테 내 방을 쓰는 법에 대한 지시를 받고 있지.”
짐이 불만스레 끙끙거렸다.
“그래. 그런데 너도 엄청 피곤해 보여.”
“지구식으로 ‘말도 못하지’가 적절한 대답으로 보이는군.”
하지만 스팍은 짐의 제안을 거부하진 못했다. 스팍이 짐을 거부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스팍은 망설이며 짐 옆에 등을 대고 누웠다. 짐의 얼굴이 위험할 정도로 스팍과 가까웠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스팍은 짐이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스팍은 짐이 제 옆에 편히 누워 점점 느릿하고 편안한 숨소리를 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기... 스팍?”
“응, 짐.”
막 잠이 들려는 모양인지 다정하고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네가 내 친구라니 난 운이 좋아. 가끔씩 내가 정말 한심하게 굴어서 미안해.”
스팍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도 내가 네 친구인 게 자랑스럽다고 생각해.”
짐은 스팍의 어깨에 코를 비벼대며 뭉개진 소리를 냈다. 스팍이 긴장하며 생각으로 불을 붙이기라도 할 기세로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스팍.”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뭉개져 있었다.
“응, 짐.”
“난 네 옆에 없으면 네가 그리워.”
스팍은 뭐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짐이 망설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넌 내 친구잖아. 늘 도와줄 거야.”
“흠.”
짐이 스팍의 어깨에 대고 졸린 듯 미소지었다.
“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
스팍이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널 ‘챙겨주기’만 하는 게 아니야. 너에게 전념하고 있어.
1. 스팍, 이 언어에 민감한 자식. 덕분에 dedicate와 devote에 대해 구글링을 해 보았다. 특히 작가님이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므로 영국 사이트를 참고하였다.
요약하자면 두 단어는 어원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가지지만 현대에 와서 devote가 본래 의미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dedicate는 훨씬 유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 devote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때 많이 쓰이는 단어이고 dedicate는 일이나 다른 관심사들을 이야기 할 때 많이 쓰인다.
2.
Why James Tiberius Kirk? He was infuriating, contradictory, emotionally unstable, unpredictable, often irrational, rash, competitive, argumentative…
And yet-
He was compassionate. He was kind, intelligent, perceptive, understanding, light-hearted, determined, almost childishly hopeful, complex… fascinating…
이번 소설을 번역하면서 단어를 많이 알면 좋겠다 ㅋㅋㅋ
3.
im cjlmgm enoew 내삳지슴가ㅣㄹ게
전화기로 열심히 오타를 내어보았다. 스팍도 커크의 말을 번역하기 힘들었지만 나도 힘들었다 =_=;;;
4. 남짓: 크기, 수효, 부피 따위가 어느 한도에 차고 조금 남는 정도임을 나타내는 말. little more than에 아주 딱 맞는 단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