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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CK/KIRK 영픽 번역/[-ing] So Here We are

[스팍/커크 영픽 번역] So Here We Are (4-1)

Neble 2016. 2. 7. 06:17

So Here We Are By Lieutenant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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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커크의 이야기 (1)

 

짐은 스팍이 조심스레 일어나는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날 시간이 된 게 틀림없었다. 감은 눈 너머로 방이 훤한 게 느껴졌으니까. 스팍이 곁에 없으니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널 그렇게 쉽게 보내줄 것 같아?”

 

짐이 웃으며 눈을 떴다. 그리곤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스팍은 침대 위에 무릎을 대고 섰다가 서서히 일어났다.

 

널 깨우지 않으려고 했지.”

 

스팍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팍은 짐이 뻗은 팔을 보고는 곁에 누울 만한 시간이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짐이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 갸우뚱한 고개 좀 봐. 왜 스팍의 습관 하나하나가 이토록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걸까? 어째서 매일 같이 새로운 습관을 하나씩 발견하는 걸까?

 

지금 몇 시야?”

“73.”

정확하네. 아직 이른 걸. 시험은 몇 시야?”

“9.”

 

스팍이 생각에 잠겨 조금 인상을 썼다.

 

몇 분 정도는 낭비해도 될 거야.”

두 시간이면 시간은 충분하네.”

 

짐이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고 행복하고 아늑했다.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스팍이 짐 곁에 누웠고 둘이 서로 마주보았다.

 

잘 잤어?”

 

스팍이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눈을 깜박였다.

 

아니.”

 

짧은 대답이었다.

 

이런. 어쩌다?”

 

짐의 말도 짧았다.

 

스팍이 중요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음에 할 말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쩐지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할 말이 평소보다 중요한 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크게 변한만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욱 어려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스팍이 또 다시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다른 일로 정신을 빼앗겼었거든.”

 

짐이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일 때문에?”

 

자신이 아는 대답이기를 바라며 짐이 물었다.

 

아니. 내 눈 앞에 누워있던 사람 생각으로 가득했어.”

 

짐이 키득대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 행동에 스팍의 눈이 빠르게 제 입술로 향했다가 다시 자신의 눈을 쳐다보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날 유혹하는 거야?”

 

스팍은 당황을 넘어 심지어 놀라는 듯도 했다. 아, 저 미간 주름하며, 저 순진한 눈이라니. 짐이 또 다시 키득댔다. 스팍은 정말 너무나도 귀여웠다.

 

“‘유혹하는것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 나는 모르겠군.”

너 완전 유혹 중이야, 스팍. 은근하고 간접적인 그런 것들이 유혹이라고.”

 

스팍은 자신의 말 중 어떤 부분이 유혹하는 것 같았는지 알아내려는 듯 자신이 한 말을 되짚어 보았다.

 

그럼 네 논리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군.”

 

짐이 더욱 크게 미소 지었다.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주 요만큼도. 어차피 둘 다 바보들이었으니까. 짐은 미소를 참을 수도, 스팍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평생 짐이 좋아한 건 여자들이었다. 짐은 항상 적극적으로 사람을 유혹했고 연애 경험도 많았다.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여자 친구도 몇 있었고, 개중엔 오래 사귄 사람도 있어서 오래 전에 사귄 어떤 여자와는 결혼할 생각까지도 했다. 짐은 연애를 즐기던 사람이었고 원나잇도 (꽤) 했지만 정말, 아니 정말로 짐이 평생 함께 할 사람을 꿈꿔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함장이 되길 선택한 뒤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다. 가끔씩 외로울 때면 원나잇이나 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삶을 살 거라고.

 

그런데 바로 눈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짐의 꿈을 완벽하게 이뤄줄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을 또 누가 알았겠는가? 짐이 평생 겪은 일들에 비하면 지금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짐에게는 아니었다. 행복하고, 평화롭고, 약속된 미래로 가득했다.

 

?”

 

스팍이 불안한 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그럼 이제 우리 관계를뭐라고 할 생각이지?”

 

짐이 고개를 숙였다. 그 문제는 정확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그건 생각 안 해봤어. 모르겠어. 내 말은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이니까 어내 생각에, 굳이 따지자면, 사귀는 거겠지.”

 

스팍이 살짝 입을 벌렸다. 계산기도 없이 머릿속으로 불가능한 공식을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참나, 스팍이 계산기를 쓴 적이나 있던가?

 

사귄다.’”

. 아니, 너만 괜찮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짐은 언제나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짐은 늘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짐은 내심 자책했다.

 

위에서 우리가 같이 근무하게 둘까? 혹시 사귀면 안 되는 규정 같은 거라도 있어?”

나는 찾지 못했어. 확인해 봤거든.”

 

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확인해 봤다고?”

 

스팍은 짐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도 한 것처럼 당황한 표정이었다. 벌칸인들이 반복을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

 

짐이 키득거렸다.

 

그래도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을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파이크 함장님은 나중에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신 바 있어. 그 분이라면 우리가 연애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마음을 바꾸실 것 같지는 않아.”

 

짐이 베개에 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 파이크 함장님이 그랬어? 정말 그런 말을 하셨어?”

그래.”

 

스팍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최근에 대화를 했었거든. 처음엔 내게 함장 직을 제안하셨지. 하지만 그분도 내 성격이나 전공은 일등 항해사를 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내 의견에 동의하셨어. 또한 그분은 우리 둘이 잘 맞는 걸 아시고는 함께 많은 경험을 쌓은 만큼 우리가 졸업 전에 각각 함장과 일등 항해사 지위를 얻는다면 우리 둘이 함께 일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도 하셨지.”

 

짐이 살짝 입을 벌리고 고개를 들어 스팍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스팍의 대답은 조금 더 다정했다. 짐의 말에서 느껴지는 놀라움과 기쁨을 이해한 게 틀림없었다.

 

난 생각도 안 했거든. 신참 둘한테 우주선을 맡기는 거잖아.”

파이크 함장님은 확실히 우리 능력을 신뢰하시지.”

 

짐이 팔꿈치를 괴고 스팍에게 다가갔다. 스팍도 누워서 짐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 지금은 내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라니까.

 

스팍.”

 

짐은 조용하지만 즐거움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꼭 아이 같았다.

 

정말 기쁜 소식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스팍도 조용한 목소리였다. 스팍은 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짐은 슬슬 초조해졌다

 

, 이런. 그동안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은 없었는데. 스팍 곁에 있으면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더욱 초조해졌다.

 

그냥 해, 뭘 기다리고 있어?

 

짐은 스팍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없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스팍은 짐이 말이 많다고 놀리곤 했지만 사실 스팍도 제대로 된 주제만 있으면 만만치 않게 말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스팍도 아무 말이 없었다. 기대감만이 공중에 떠다녔다. 뭔가가 두 사람을 이끌었다.

 

스팍.”

, .”

지금 너한테 입 맞출 거야.”

 

짐에겐 스팍이 냉정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 반응에 짐은 꽤 만족했고, 심지어 우쭐하기도 했다.

 

불만은 없어.”

 

짐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숙여 스팍에게 입을 맞췄다. 스팍도 살짝 고개를 기울여 화답했다. 전날 밤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망설이는 입맞춤이었다. 좋은데. 짐이 조금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의 입술이 그저 스치기만 했다. 짐이 왼손으로 스팍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스팍의 아랫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다.

 

과거의 어떤 경험과도 달랐다. 그 전율, 그 초조함,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의 새로운 모습, 이를 테면 서늘한 피부 같은 것들이.

 

아니면

 

, 정말 키스 잘 하네.

 

아니면

 

, 혀가 닿을 때 흠칫할 줄 알았더니 나만큼이나 꼼짝 안 하는데.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일 거야.

 

짐의 손이 스팍의 허리로 미끄러지던 순간 짐이 물러났다. 짐은 여자를 만나서 몇 시간 만에 그녀의 침실로 가는 것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너무나도 달랐다. 짐은 모든 순간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새로운 모든 것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다. 스팍이 벌칸인 혼혈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어서 짐이 생각할 때 스팍이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젠장, 짐은 스팍이 자신 때문에 저토록 불안해하는 게 좋았다. 게다가 조금 흐트러진 모습도.

 

이제 너 준비해야겠다.”

 

짐이 작게 속삭였다.

 

스팍이 짐의 눈 속에서 대답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스팍이 대답했다.

 

그래, 그래야겠어.”

 

짐이 웃으며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켰다.

 

그래, 그럼 준비해. , 글쎄, 혹시 생각 있으면 이번엔 내 방으로 올래? 혹시 혼자 있고 싶으면, 아니 나도 이해하는

시험은 오후 9시에 끝나. 끝나고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짐이 고개를 숙였지만 바보 같은 미소가 얼굴에 퍼져 나갔다.

 

좋아.”

 

나 지금 얼굴 빨개진 거야? 맙소사, 정신 차려, 커크.

 

짐이 침대에서 일어나 등을 젖히고 팔을 쭉 뻗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짐이 제 교재를 들자 스팍이 문을 열고 붙잡아주었다. 아직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어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하지만 짐은 위험을 감수하고 시지는 않았다. 짐이 천천히 문을 닫았다. 스팍은 여전히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스팍이 얼굴을 찌푸렸다.

 

너한테 필요 없는 것도 알고 벌칸인들이 행운을 믿지 않는 것도 아는데

 

짐이 고개를 들고 스팍에게 짧고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누군가 스팍의 표정을 본다면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고 조심스럽다고 하겠지만 짐은 스팍의 눈 속에서 놀라움을, 또 스팍의 볼에서 연한 녹색 기운을 발견했다. 그 작은 차이가 짐의 마음을 안달하게 만들었다.

 

행운을 빌게.”

 

스팍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겨 다시 문을 열자 짐이 건방진 미소와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나 때문에 스팍 얼굴이 상기됐네.

 

문을 닫으며 짐은 옛날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음이 통한 여자 앞에서 하듯 뒷발질로 문을 닫고 싶었다. 짐은 자신이 원나잇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고 함장이 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절대로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이 노래하고 영화로만 그려내던 그런 사람을. 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사람, 생각만으로도 수많은 추억이 밀려오는 그런 사람을 발견하게 된 거다.

 

침은 바보처럼 계속 미소 지었다. 뛰면서 소리치고 웃고 싶었다.

 

문제는 너무 피곤하다는 사실이었다.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궁금해 하면서도 대답은 알고 있었다. 스팍 곁에서는 깊게 잘 수 없었으니까. 자면서도 새롭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쉬지 않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짐은 완전히 녹초가 될 때까지는 쉬는 사람이 아니었다.

 

짐은 다른 학생들의 존재를 생각지도 않고 지나쳤다. 짐은 시간이 얼마나 흐른 줄도 알지 못한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잠옷을 꺼내 입고 제 입술에 닿았던 스팍의 입술을 떠올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짐은 시트를 휘감고 다리 한 쪽은 침대에 걸친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과하게 자버렸음을 안 짐은 신음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허풍이 아니었다. 침대 맡에 시계를 보았다. 오후 513분이었다.

 

세상에.”

 

짐이 말꼬리를 끌었다. 9시간이나 잔 것이다. 오늘 밤은 잠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에 문득 따뜻한 기운이 가슴을 채웠다.

 

그 때 복도에서 본즈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짐을 깨운 건 바로 그 목소리였다.

 

본즈는 노크도 없이 들이닥쳤다.

 

, 난 술 한 잔 해야겠는데 너도 같이 할 거야?”

 

본즈가 문가에 기대 선 채 물었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콧대를 찌푸린 게 짐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눈치였다.

 

세상에, , 방금 일어난 사람 같다.”

방금 일어났거든.”

 

짐이 피곤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난주에 별로 못 잤잖아.”

 

본즈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진짜 네 주치의였으면 내 책을 압수하고 침대로 보내버렸을 거야. 너도 내 말을 들어야 했을 거고. 뭐 그런다고 내 말을 듣지는 않았겠지만, 안 그러냐?”

당연하지.”

 

짐이 웃었다.

 

나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오늘 밤에 놀러올 사람이 있거든.”

그래, 그런 것 같다.”

 

본즈가 툴툴거렸다.

 

그래도 내일은 같이 가 줄게. , 맞다, 사실은

 

짐이 침대가로 숙이더니 상자 하나를 꺼냈다. 위스키가 든 상자였다.

 

나랑 잠깐 한 잔 할 거면 나도 술은 있어. 피자 시켜.”

 

본즈가 생각해 보더니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근데 그건 좀 후유증이 있는데.”

어쨌든. 나도 너랑 이야기 좀 하고 싶거든. 지난주에는 도통 못 봤잖아.”

스팍이 심술을 부린 뒤로 못 봤지.”

 

짐은 대답 없이 술병을 따서 본즈에게 건넸다. 짐은 심술이 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걘 완전 미친 놈 같아.”

그건 그렇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짐도 스팍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으니까.

 

짐은 본즈에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본즈의 생각을 물어보고 싶었다. 본즈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또 짐은 항상 본즈의 생각을 물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망설여졌다. 짐이 엄지와 검지로 이불을 만지작댔다.

 

본즈.”

.”

 

본즈가 짐을 쳐다보았다.

 

, 이번엔 뭐야? 이번엔 또 어쩐 불쌍한 여자애 마음을 아프게 한 거냐?”

 

본즈가 술을 벌컥 마시며 투덜댔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세상에, 그게 아니네. 그 표정 전에도 봤어. 연애 상담하려고 하는 거잖아.”

 

짐이 불만스레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뒤로 젖혀 벽에 기댔다. 그냥 물어보고 놀림은 감수할까? 아니면 묻지 않는 대신 제일 친한 친구를 속인다는 마음을 감수할까?

 

그래, 안 물어볼게. 나한테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 친구의 의견이 궁금했을 뿐이야. 그런데 뭐, 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말 안 꺼낸 셈 칠 수는 있는데

 

짐이 술병에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본즈가 술병을 치웠다.

 

알았어, 뭔데.”

 

짐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 어떤 사람이 있는데

. 그럴 줄 알았지. 아무튼, 말해 봐.”

 

본즈가 술병으로 짐을 가리켰다.

 

짐이 본즈를 노려보았다.

 

아무튼, 우리가 서로 좋아하긴 하는데 나중에 같이 일할 수도 있거든. 그 기회를 망치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짐이 말을 찾느라 고심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날 행복하게 해 주는 남자야, 본즈. 그러니까 이건 그동안의 연애와는 전혀

남자?”

 

본즈가 술을 뿜으며 수상하다는 듯 짐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본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남자한테도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나도.”

 

짐이 웅얼댔다.

 

갑자기 병을 기울이던 본즈가 그대로 굳었다. 본즈가 병을 내려놓더니 느릿하게 짐을 돌아보았다.

 

빌어먹을, . 설마 내 머릿속에 있는 네가 말하는 사람이 지금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은 아니겠지.”

네 머릿속에 있는 내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세상에,

 

본즈가 신음하며 머리를 젖혔다.

 

맙소사. 너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 뭔데?

 

짐이 변호하듯 대답했다.

 

이제 걔랑 말싸움 할 때마다 니가 걔 편 들 거라는 소리잖아.”

 

본즈가 아무렇지도 않게 병째 술을 벌컥 마셨다. 짐이 마음을 놓고 웃었다. 본즈가 신경 쓰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조금 질색은 하겠지만. 본즈는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본즈가 반대한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본즈는 짐이 자신을 살피는 걸 알 수 있었다. 본즈가 눈을 흘기며 짐을 돌아보았다.

 

, 이 멍청아,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너희는 이미 꼭 붙어 다니는데 너희가 사귄다고 같이 일을 못 할 이유는 또 뭐야. 관계가 좀 다르기야 하겠지만 너희 둘 다 일에서는 철저할 거잖아, 안 그래?”

그렇지.”

 

짐이 벽에 머리를 기댔다.

 

너희가 원래 갖고 있던 유대감은 안 변할 거고 그러니 앞으로도 둘이야 잘 맞겠지. 그게 있으면 둘 다 괜찮아, . 뭐가 됐든 그게 우선일 테니 일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안 그래?”

맞아.”

그래. 시험 이야기나 해 봐.”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래서 짐은 본즈가 좋았다. 본즈는 모든 일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본즈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둘은 그 이후 한참동안 짐이 별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본즈가 시험 문제로 투덜대는 이야기나 식당의 저녁 메뉴라든가. 짐은 본즈와 크리스틴 차펠과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했다. 크리스틴은 간호 전공이었으니 두 사람이 함께 듣는 강의가 많았다. 본즈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지만 본즈도 마음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본즈는 젠장넌 바보야, 같은 말로 대답을 피했다.

 

피자 두 판과 위스키 반 병을 비우고 나서야 짐이 시계를 보았다. 920분 전이었다.

 

, 재미도 있고 내일도 만나겠지만 내가약속이 있거든.”

, 누가 놀러온다고 했.”

 

본즈는 조금 혀가 꼬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움찔했다.

 

, 이런, 그런 거네. 그런 의미로 놀러온다는 거잖아. 젠장, 말하지 말지 그랬어. 자꾸 상상되잖아.”

그냥 사귀는 거야, 알았지?”

 

짐이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그래, , 자세히는 말하지 마라. 커플은 나랑 안 맞으니까.”

내일 보자.”

 

짐이 눈을 흘기더니 미소를 지었다.

 

본즈가 느긋하게 손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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