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니비루에서 돌아온 다음에 복도에서 있었던 일이랑은 상관이 없는 거야?”
스팍이 눈을 크게 떴고 이는 커크가 여태 본 어떤 표정보다 더 분명히 스팍이 놀랐음을 보여주었다.
“아니오. 물론 아닙니다. 저는―”
스팍은 거기서 말을 멈추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복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르지.”
커크는 약간 동요하면서 대답했다. 이게 다 오해였다고? 이유도 없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면… 그게 뭐였든 복도 사건이라 부르기로 한 일을 스팍도 알았다는 건데.
“너는 아는 것 같은데.”
스팍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자신을 보호할 뭔가를 찾는 모양새였다.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는 무척 작았다.
“짐… 니비루 이후에 일어난 일로 우리가 닿았을 때, 유대가 생겼습니다.”
“유대?”
커크가 인상을 썼다. 익숙한 단어였다.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스팍도 제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커크는 벌칸 문화에 대해 쓴 책을 패드에 받아두었던 생각이 났다.
“벌칸 유대? 깨지지 않는다는? 그게 그거였어?”
“그렇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금빛이 있는 거야?”
물어보면서 커크가 집중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인상을 쓰고 내면을 탐색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옛날에는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스팍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찌푸린 미간은 더욱 찌푸렸다. 커크가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떨리는 숨을 내뱉고 스팍이 대답했다.
“당신이 죽었을 때 깨졌습니다.”
“그렇지만 방금 안 깨진다고 했잖아.”
두통이 심해졌다. 작은 촉수가 두개골 밑을 파고들어 이마를 휘감았다.
“유대를 이룬 사람 중 한 명이 죽으면 유대는 깨집니다.”
스팍이 조용히 설명했다. 스팍은 커크가 시트 밖으로 내밀어 둔 손을 바라보았다.
커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답을 하는 게 능력 밖의 일 같았다. 스팍은 이를 눈치 챈 듯 했다.
“피곤하실 겁니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막 정신이 드셨으니까요.”
커크를 내려다보는 스팍의 눈이 깊고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스팍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리더니 몸을 돌렸다.
“아니, 기다려. 기다려줘.”
“네?”
커크가 부르자 스팍이 커크를 바라보았다.
“있을래?”
커크가 부탁했다. 이런 감정은 낯설었다. 커크는 약간 불편했다.
“유대에 대해 말해줘.”
스팍은 부서질 것 같았다. 커크는 스팍이 유약하거나 연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스팍은 그랬다. 단정한 모습을 하고 스팍이 머리맡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아 몸을 곧게 세웠다.
“애초에 그게 왜 생긴 건데?”
“저희 내면이 잘 맞았기 때문에 유대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겁니다.”
커크가 묻자 스팍이 대답했다. 조용한 목소리가 커크가 깨어난 조용한 무균 병실을 채웠다.
“너는 유대가 생길 줄 알았어?”
스팍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자발적인 유대의 발생은 드문 일이지만… 없지도 않습니다. 특별한 유대가 있는데, 이는 트하일라 사이에서 형성되며, 트하일라란―”
“나 그거 뭔지 알아.”
커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커크는 스팍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확한 표준 번역은 없지만 비슷한 뜻으로는 친구, 형제…연인이 있다. 커크가 읽은 책은 트하일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관계를 마치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그리고 있었다.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지만.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은 눈을 피하며 또 다시 커크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우리 사이에 그 유대가 생길 줄 알았던 거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스팍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습니다.”
커크는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마치 솜뭉치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스팍이 유대가 생길 줄 알았다면, 두 사람이 트하일라임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 말은 두 사람의 내면이 잘 맞는다는 뜻이고 그건… 그러니까, 뭐지?
스팍이 또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커크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임스… 짐. 당신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무척 후회했습니다. 제가 가졌던 감정을… 가진 감정을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커크는 숨을 멈췄다. 스팍을 바라보았다. 스팍은 마치 속삭임처럼 조용히 이야기했다.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단단한 일등 항해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스팍은 산들바람에도 쓰러질 듯 했다. 커크는 입을 굳게 다물고 기다렸다. 커지는 긴장에 마음이 불편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조용히 숨을 내쉬고 스팍이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둘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몇 주간 크나큰 고통이 있었지만.”
스팍이 고개를 들어 커크와 눈을 맞췄다.
“Taluhk nash-veh k'dular… 저는 당신을 사모합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지만 머릿속으로 커크는 본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두 사람의 모습에 놀라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그때 어리석고 형편없이 껄끄러운 불안함이 마음에 스쳤다.
커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진심이야?”
“물론입니다.”
스팍이 대답했고 그 목소리에 불신의 그림자가 부드럽게 덮였다.
“지금처럼 진심이었던 적도 없을 겁니다.”
수개월동안 가슴 안에 자리하고 있던 뜨겁고 딱딱한 멍이 풀어지고 너무나 멋진 무언가로 변했다. 입가에 퍼지는 지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커크는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시발, 바보 같아. 자신은 다 큰 성인 남자였지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커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스팍이 자신을 사랑한다. 이런 씨이발. 쌍시옷이다. 사라지지 않는 행복한 미소에 뺨이 아파왔다. 커크가 다시 눈을 떴다.
스팍이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로 크게 눈을 뜨고 자신을 보았다.
“있잖아, 스팍?”
“네?”
“나도 사랑해.”
한동안 스팍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러더니, 믿어지지 않게도, 스팍은 무척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도 미소가 퍼지더니 커크 눈앞에서 밝게 빛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행복이 병실 안 공기와 가슴을 데웠다. 젠장, 두 사람은 감정이 얽힌 데에서는 엔터프라이즈호에 있는 누구보다 멍청했고 지금은 덜떨어진 모양새였다. 두 사람 곁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커크가 팔을 들어 올리고 조용히 요청하듯 손가락을 뻗었다.
스팍이 내려다보더니 멈추었다.
“짐… 살이 맞닿는다면 유대가 다시 생겨나게 됩…”
“괜찮아.”
고개를 든 스팍은 걱정으로 이마에 주름이 졌다.
“벌칸 유대를 허락한다는 것은 영원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처음 생긴 본드가 자발적이었다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되는―”
“스팍.”
커크가 말을 끊었다.
“나 지금 결혼하자고 말한 거 맞는데. 설마 죽다 살아난 남자가 하는 청혼을 거절하려는 거야?”
스팍이 입을 열었고 혀끝에는 거절하는 말이 또렷하게 맴돌았지만 다시 입을 다물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해.”
커크가 장난스럽게 오만한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의미심장하게 여전히 뻗어있는 손을 쳐다보았다.
조심스레 스팍이 한 손을 들어 부드럽게, 무척이나 부드럽고 느릿하게 커크의 손가락에 갖다 댔다.
빛이 번쩍였다. 달콤하고 황홀한 빛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살갗과 머릿속이 따끔거리더니 맙소사 스팍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
커크는 손가락에 가볍게 닿아있던 감촉이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스팍은 한 손으로 커크의 손을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랑과 헌신을 채 담지 못하는 애무를 하며 살을 지분거렸다. 긴 손가락이 커크의 손마디와 손목과 손바닥의 굴곡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떨리는 숨결이 가슴과 폐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희열과 따뜻한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크는 자신의 벌칸인을 바라보고 그가 제 유대 반려자라는 생각만으로 껌뻑 죽었다. 물론 전에도 유대로 묶여있던 사이였지만 커크가 몰랐을 뿐이었다. 스팍이 눈을 감았다. 스팍의 내면이 커크의 내면을 휘감아 둘이 더 이상은 둘로 나뉜 사람들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가까이 끌어안았다.
숭배와 애정과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파도가 커크에게 다가와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부딪혔다. 커크는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에 푹 잠겼다. 흠모하는 마음과 빛이 폭포처럼 내면으로 흘러 들어왔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에 취했다.
…
스팍은 반려의 내면이 육체의 필요에 굴복하는 순간을 느꼈다. 두 사람은 이십이 분간 다시 이어진 유대를 음미하며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커크의 근육은 약했다. 방사능이 큰 피해를 준 데다 칸의 피 역시 커크를 죽일 뻔 했다. 하지만 반려는 다시 제게로 돌아왔고 스팍은 커크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돕기로 맹세했다. 이제 스팍은 피곤해 보이는 반려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작은, 잠에 취한 미소가 입술에 덧그려졌다. 커크는 스팍의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려놓았고 내면은 스팍의 내면에 평온하게 기대왔다. 커크는 너무나 피곤해서 스팍의 품에 안겨있기만 할 뿐이었다.
스팍이 커크의 살갗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자, 부드러운 따끔거림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조심스레 스팍이 손을 빼내고 몸을 굽혀 반려의 이마 위에 길고 다정한 입맞춤을 했다. 스팍은 편두통으로 스며드는 고통이 커크의 내면까지 들어온 것을 느끼고 부드럽게 없애주었다.
스팍은 이제 커크를 붙잡으려 만지지 않아도 되지만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살결이 제 트하일라가 죽던 잊히지 않는 충격을 달랬다. 유대는 비록 다시 이어진 것이라 해도 계속해서 비벼대는 제 반려의 내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주무세요, 아샤얌.”
스팍이 관자놀이께 금빛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커크의 살갗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애석한 듯 스팍이 몸을 떼고 문으로 걸어갔다. 멈춰서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심장이 조이는 듯 했다. 커크는 벽에 달린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공유한 유대를 통해 언제든 제 반려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하며 스팍은 병실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 스타플릿이 직면한 현실인 칸의 복수와 마커스의 배신의 여파 속으로 돌아갔다.
- - -
“Oh don’t be so melodramatic, you were barely dead.”
“너무 감동하지는 말라고. 죽었던 건 아니니까.”
barely와 같이 형태는 긍정이지만 단어의 의미 자체가 부정인 단어는 단번에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 위 문장은 '간신히 죽음은 면했다'는 의미이다. 참고삼아 사전을 찾아보니 barely와 비슷해 보이는 hardly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You were hardly dead."라고 하게 된다면 죽을 위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의미라서 '그러니 엄살부리지 마'라는 뉘앙스를 갖는다. 이렇게 비교해보니 조금이나마 느낌이 와닿네. 좋은 공부 했다!!
"I cherish thee."
"당신을 사모합니다."
cherish를 직역하면 참 어색했는데 thee가 옛글투인 점에 착안하여 이렇게 옮기니 좀 낫다.
Holy Fuck with a capital F.
이런 씨이발. 쌍시옷이다.
재미없는 사람이라 찰진 드립력따우...ㅠㅠ
“Love you, too.”
“나도 사랑해.”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ㅂ<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지? 아아아아아아악!!!!!!!!!!!
They had been holding onto each other – physically and mentally – for twenty-two minutes, basking in the renewed bond.
두 사람은 이십이 분간 다시 이어진 유대를 음미하며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는 표현이 진짜... 갑자기 마쉬멜로우가 들어간 코코아가 확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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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챕터 4개 남았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시작할 땐 엄두가 안 나더니, 이걸 하긴 하네요... 덕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