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커피나 하지 않겠냐는 스팍의 제안에 게일라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눈치였다. 게일라는 화면 위로 손을 움직이면서 어깨 너머로 스팍을 돌아보았다. 군용기 외관과 관련된 텍스처를 불러왔다. 게일라는 끝이 고르지 못한 날개 모양을 손 볼 생각이었다. 텍스처가 잘 맞지 않았다. 스팍은 대답을 기다리며 등을 폈다.
“시간문제일 줄 알았어요.”
게일라가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을 털어놓았다.
“자네만 괜찮다면 짐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네. 명령은 아니야.”
“명령 아닌 거 알거든요. 오늘 저녁 스케줄 어떻게 되세요?”
“06시 45분부터는 비네.”
“코크레인에서 07시에 뵙겠습니다. 술 한 잔 사시면 이야기 들어드릴게요.”
“고맙네.”
스팍이 대답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스팍은 고급 기술자들이 작업한 수정사항을 검토한 뒤, 그 중 여덟 개를 승인하고 여섯 개는 추가 작업을 하라고 돌려보냈다. 스팍은 오후 강의를 마치고 교수실에서 근무하며 책을 읽고 점심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코크레인의 주소를 찾아보니 학교에서 걸어갈 만 했다. 생도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유가 이해가 됐다. 스팍도 코크레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자신이 입은 옷을 입고 가도 되는지 게일라에게 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학생을 만나는데 교관 제복을 입고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겉옷을 입고 있으면 제복을 입은 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십이월 초순이었고 밖은 쌀쌀했다. 벌칸인이 실내에서 겉옷을 입고 있다 해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귀가 덮이게 모자를 푹 눌러쓴 스팍이 출구로 향했다.
***
스팍은 어깨 너머로 풀어 내려뜨린 게일라의 머리카락을 알아보았다. 한 손에 맥주를 든 게일라는 스팍을 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표시하고 게일라가 마음 써서 코트를 올려 맡아둔 카운터 석으로 걸어갔다.
“뭘 드실지 몰라서요.”
스팍이 자리하자 게일라가 말을 걸었다.
“물을 마시지.”
스팍이 대답하며 모자와 장갑을 벗었다. 스팍은 모자와 장갑을 잘 정리해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재미없잖아요. 초콜릿에 대한 소문 사실이에요?”
“그래.”
게일라가 유쾌하게 물어보자 스팍이 한숨을 쉬었고 게일라가 바텐더에게 손짓을 했다.
“초콜릿 마티니로. 초콜릿 듬뿍 넣어서. 계산은 이 분이 하시는 걸로.”
게일라가 윙크하자 바텐더가 볼을 붉히며 보드카를 한 잔 따르려고 셰이커를 찾아 더듬거렸다.
스팍은 이곳에 처음 왔지만, 짐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적은 있다. 조명은 어둑했고 구석구석 청소해야 할 만큼 더러웠다. 아무데도 닿지 않으려 노력했다. 제프람 코크레인의 이름을 딴 가게인 것은 알았지만, 일부 조명이 꺼진 외부 간판에 쓰인 이름 외에 코크레인이 이룩한 업적에 대한 헌사는 이곳에서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실내 음향 상태는 엉망이었다. 음악이 불쾌할 정도로 요란하게 울렸다. 금속으로 된 카운터 석 의자는 불편했지만 빨대로 맥주를 마시며 등을 기대고 앉은 게일라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맥주는 병째 마시거나 잔에 따라 마시는 음료라 생각하네.”
스팍이 한 마디 했다. 게일라는 우아하게 한쪽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동작에 게일라가 입은 검은 드레스가 돋보였다. 어깨와 팔을 드러낸 드레스는 온 몸을 감싸고 발목까지 길게 늘어졌다. 스팍조차 게일라에게 어울리는 옷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편해요.”
그렇게 대답한 게일라가 또 다시 요란하게 맥주를 빨아 마셨다. 바텐더가 게일라를 향해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스팍 앞으로 마티니를 밀었다.
“고마워, 자기. 가끔 나랑 만나고 싶으면 연락처 좀 줄래?”
스팍은 바텐더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통신기를 꺼내 게일라의 통신기에 갖다 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여자애 귀여워요.”
바텐더가 다음 손님에게 향하자 게일라가 중얼거렸다. 스팍을 바라보더니 마티니를 가리켰다.
“어떠세요?”
스팍이 마티니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흐릿한 갈색을 띤 불투명한 액체가 거의 잔 입구에 닿을 만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 잔이 삼각형 모양이었다. 유리잔 옆면에 짙은 갈색 물질이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었는데 초콜릿이겠거니 했다. 시험 삼아 한 번 홀짝이고 씁쓸한 술맛에 움찔했다. 삼키고 나서 혀를 헹구고 싶어졌지만 게일라가 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다. 최소한 게일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마티니를 마시기로 했다.
“괜찮네.”
스팍이 한 모금 더 마셨다.
“브로 생―”
“게일라. 여긴 술집이고 저 지금 섹시하거든요. 게일라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지.”
“그러니까 짐을 되찾는 법을 말씀드리면 되는 거죠?”
게일라는 또 다시 빨대로 맥주를 빨아들였다.
“짐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네.”
“우리 거짓말은 하지 말죠. 짐이랑 하고 싶어 죽겠으면서. 놀리는 게 아니라, 저도 이해하거든요.”
게일라와 짐이 그런 사이였다는 말에 스팍이 이를 악물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선 아셔야 할 건, 짐은 지가 못 이기는 상황은 생각지도 않는 거고 그건 중령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비논리적이니까.”
“상식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 감정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감정은 논리적이지 않고 인간도 그래요. 짐은 감정적인 인간이고 중령님은 걔한테 상처를 줬어요. 이해되세요?”
“트프링의 정체를 먼저 밝혔어야 하는 거군.”
“그날 저녁에 문 앞까지 쫓아가서 꽃 들고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비셨어야 된다는 말이거든요.”
“짐이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꽃가루가 많아.”
스팍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대답했다. 게일라가 깔깔 웃었다.
“술자리니까 스팍 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괜찮으시죠?”
“합당하군.”
“좋아요, 스팍 선배. 제 말은 걔가 부끄러웠던 것과 맞먹는 강도로 사과하셔야 했다는 말이에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처음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마티니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게일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무슨 뜻인가.”
“짐은 스타플릿 공식 행사에서, 선배님 부모님도 계신데, 선배님께 사모님이 있는 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알게 됐어요. 그러고도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없는 척 해야 했고요. 선배님은 그걸 문자로 사과하려 하신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사과해야 했나?”
“짐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야 한다고요.”
게일라가 엄한 얼굴을 했다.
“최소한 전화는 했어야지요. 짐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별다른 말없이 문자로 정중하게 전화 좀 해달라니요?”
“짐은 내가 가식적이라 생각했겠군.”
“무시당하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게일라가 맥주를 더 주문하려 손짓했다.
“이 주 넘게 계속 연락했네.”
“문자로요.”
게일라가 강조했다.
“게다가 매번 같은 내용으로.”
“이것저것 바꾸긴 했네.”
스팍이 변명했다. 게일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와달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미안하네.”
스팍이 즉시 대답하고 마티니를 두 모금 마셨다. 마티니는... 나쁘지 않았다. 몸이 조금 더 노곤해졌다.
“괜찮아요. 자, 다행히도 짐은 아직도 선배한테 푹 빠져있어요.”
“짐이 그런 말을 했나?”
“짐이 매주 시 낭송회에 오고 있거든요.”
게일라가 주문한 맥주를 받아들었다. 목에 종이로 만든 녹색 우산이 달려있었고, 게일라가 바로 집어 들어 오른쪽 귀 뒤에 꽂았다.
“정기적으로 가던 곳이지 않나.”
“이 분 참.”
게일라가 고개를 가로젓자 구불거리는 머리칼이 흔들렸다.
“제 시가 그렇게 잘 쓴 건 아니거든요.”
“내가 올지도 몰라서 시 낭송에 참석한다는 뜻인가?”
게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팍이 곰곰이 생각하며 마티니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내가 가도 짐이 계속 자리에 남아 있을 거라고 보는 거군.”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집에는 안 가던데요. 농담 아니고, 꼬셔 봤어요.”
두 사람은 2분 8초간 말이 없었다. 게일라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문자에 답을 했다. 스팍이 잔을 꼭 쥐었다.
“시 낭송회에서 말을 걸어봐야겠군.”
겉으로 드러난 초콜릿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남은 술은 이제 잔 입구에서 약 3센티 아래로 줄어있었고 스팍의 손은 기분 좋을 만큼 따뜻했다.
“그러면 될 거예요.”
게일라가 중얼거렸다. 빨대로 맥주를 마실 때마다 볼이 움푹 파였다. 게일라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오! 알았다!”
스팍은 “무엇을” 알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시를 읽어주는 거예요.”
“부끄러움의 표시로 말인가?”
“사랑의 표시로요.”
“우리 상황을 대변할 만한 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라는 게 아니거든요. 시를 한 편 쓰시라고요.”
게일라가 스팍의 팔을 찰싹 때렸다.
“시는 써 본 적이 없네.”
스팍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냥... 느끼는 대로 쓰세요.”
“짐이 앉은 자리로 직접 가는 게 좋지 않겠나?”
옷깃이 목을 조이는 기분이었다.
“엄청 낭만적일 거예요!”
***
아만다가 시를 번역해보라고 권했던 이유는 스팍에게 시를 읽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처음에 스팍은 그가 선호하던 과학 논문이나 수학 교재와 비교하면 시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 깊이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시를 이용해보라고 제안하기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생각에서 시를 한 편 번역해 보기로 했다.
번역은 스팍이 처음 생각한 것 이상으로 궁리를 해야 했다. 프랑스어 원문을 번역해 보았지만 열린 문으로 솔직한 인간을 나타낸 원 시의 은유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벌칸어로 그 시는 사람의 배를 가른다고 쓰였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묘사할 단어를 찾기 위해 스팍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스팍은 벌칸 재정립 이후 잘 쓰이지 않는 단어 몇 개를 사용했고, 또한 자신의 첫 번역에 만족했다. 그 결과에 어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못마땅해 하실까 걱정했지만, 아버지가 소장한 대규모 장서를 꼼꼼히 보다가 열한 개 언어의 시집으로 가득 찬 책장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우선 전자패드에 시를 쓰고 마지막에 손으로 벌칸어를 옮겨 적는 번역은 스팍이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되었다. 스팍은 아만다가 사렉과 여행하며 모은 공책에 제 작품을 적어 제 방 책장 두 개에 모아두었다. 스팍은 그 공책과, 질 좋은 종이와, 장정한 책등이 그리웠다. 여섯 권은 가죽으로, 스물두 권은 천으로, 한 권은 금속으로, 한 권은 두꺼운 종이로 표지를 댔다. 스팍은 눈을 감고 제 손가락에 쥔 펜의 감촉을 떠올렸다. 느릿하지만 정확하게 잉크에 담그던 느낌과 펜촉이 종이를 긁고 끌던 느낌을. 번역본을 책으로 옮기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지만, 스팍은 직접 시를 지으려 해 본 적이 없다.
스팍은 머릿속으로 짐에 대한 시를 짓기 시작했다. 정확한 형태가 마음에 들어 하이쿠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짐이 가진 장점 중 고작 하나를 주제로 골라낼 수 없었다. 짐을 보면 애가 타는 이유는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스팍은 소네트를 지으려다 독백으로, 서사시의 도입부로 형식을 바꾸었다. 다 옳지 않았다. 스팍이 창문을 향하고 눈을 비볐다. 스팍은 그런 형태에 맞춰 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스팍은 책상으로 걸어가 돌아오는 주에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를 보기로 한 생도 일정표에 접속했다. 목록 맨 위에 있던 이름에 놀라지도 않았고 짐이 월요일 아침에 테스트에 떨어졌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짐은 전망대를 한 번도 올려다보지 않았다.
***
화요일 아침, 스팍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재시험 신청서를 바라보았다. 재시험 대기 기간은 한 달임에도 짐은 고작 십오 일 뒤에 재시험을 신청했다. 신청서를 반려시켜야 했지만 스팍은 일 분 팔 초간 신청서를 바라보다가 전자패드를 꺼버렸다. 고바야시 마루 모의시험이 실제 상황이 아니듯, 이것은 시험이었고 스팍은 짐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짐은 그저 모의시험이 끝나기만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4월 1일부터 새 함선 배치가 연이어 발표된다. 짐이 통과한다면 지휘부 말단 자리를 맡을 수 있게 된다.
비논리적인 반응이지만, 짐이 떠난다는 생각에 풀이 죽었다. 스타플릿은 우주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당연히 짐도 우주에 갈 것이다. 짐은 패러것이나 히파티아호 같은 우주선에 배치되리라. 짐이 엔터프라이즈호에 배치되길 바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리 파이크가 함장이라 해도 이제 막 사관학교를 졸업한 생도가 기함이 진수하자마자 배치될 가능성은 적었다. 파이크는 그저 권한이 많을 뿐이다. 수뇌부가 허가하지 않으리라.
스팍이 차를 두 잔째 복제해 바닥에 디딘 발 외에는 어디 한 군데 기대지 않고 부엌 한 가운데 서서 차를 마셨다. 짐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감춰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재시험을 승인하고 짐이 떠나게 내버려 둬야 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벌칸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스팍은 짐의 손을, 제 셔츠 아래에서 따뜻하게 쓰다듬던 손길을, 제 갈비뼈 위를 춤추듯 더듬다 제 가슴께에 머물던 손가락을 그리워했다.
스팍이 고개를 숙였다. 이런 느낌을 원한 적은 없다. 느끼려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느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일은 비논리적이리라.
게일라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열세 시간 삼십삼 분 남아있었지만 쓰다 만 시 네 편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사과의 말 말고는 보여줄 게 없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지만 짐은 정형화된 시구로 표현되지 않았다.
잘못된 시각에서 시에 접근했다는 게 분명해졌다. 시의 형태가 아니라 짐 그 자체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 생각은 샤워를 하면서, 옷을 입으면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견디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스팍은 부정확한 형식이라는 사치에 취한 채 고개를 숙여 인도를 내려다보고 걸었다.
***
스팍은 커피숍의 따뜻한 공기에 흡족해하며 난로 바로 옆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게일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른 손님 둘은 원형 탁자에 각각 앉아있었고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스팍은 모자와 장갑을 벗어 어깨에 메고 온 가방에 단정히 넣고 향이 강한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마이크가 이미 준비된 것을 눈치 챈 스팍의 속이 뒤틀렸다. 스팍은 정기적으로 학생 삼백 명이 있는 강의실에서 강의를 한다. 커피숍에는 끽해야 서른다섯 명 정도밖에 들어올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이 뛰었다.
게일라가 들어오자 마찬가지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좌우를 둘러보고 스팍과 눈이 마주치자 게일라가 눈을 찡긋했다. 짐이 뒤따라 들어와 마이크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짐이 자신을 눈치 채지 못했기에 스팍은 고개를 숙이고 제 차에 비친 조명을 바라보았다. 일곱 명이 더 들어왔다. 두 명이 스팍 곁에 앉아 짐이 앉은 탁자를 가렸다. 짐이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은 보았지만 이번엔 짐이 자신을 봤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짐이 웃는 소리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19시 2분이 되자 게일라가 일어나 마이크를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저녁엔 특별한 손님이 있어요. 여기서 첫 작품을 발표할 새로운 시인이죠. 맞이해 주세요.”
게일라가 손을 뻗어 자신을 부를 때까지 스팍은 의자에 앉아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구석에 있던 자리에서 커피숍 한가운데를 지나가자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벌칸인 아냐?”
그리고 스팍은 짐이 앉은 자리를 지나 게일라가 서 있는 무대로 걸어갔다. 게일라는 다정한 눈으로 스팍을 바라보고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스팍이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등 뒤에서 양 손을 꼭 쥐었다. 눈을 들어 맨 앞에 놓인 탁자를 바라보자 짐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짐은 신중한 표정으로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짐은 일어나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짐이 눈썹을 치켜 올리기에 스팍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써 보려고 했습니다
I intended to write
하이쿠를,
a haiku,
하지만 당신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but I could not limit you
고작 열일곱 자에
to seventeen on.
그 형식은 그 정밀함으로 아름답지만,
The form is pleasing in its exactness,
당신은 정밀하지 않습니다
but you are not exact.
나는 당신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I would not alter you.
나는 두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I exist between two worlds:
이것도 아니고,
not fish,
저것도 아니고,
not fowl,
둘 다이지만 둘 다 아닙니다
both and neither.
내 부모님이 나를 들어 올렸습니다
My parents raised me
구름 너머로, 그 때
among the clouds, and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I looked skyward.
나는 내가 갈망하는 줄 몰랐습니다
I did not realize I longed
바다를,
for the sea,
대양의,
for the deep,
한없는 푸름을
unfathomable blue.
내 족속은 파도의 흔들림을 꺼립니다
My people shun the motion of the waves.
우리가 좌초하게 된다 해도,
When we met along the strand,
나는 파도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을 겁니다
I would not enter the surf.
나는 들이마시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I was ashamed to inhale
축축한 바다 내음을,
the wet salt air,
하지만 내가 그리 하였을 때 당신이 기뻐하였고,
but it pleased you that I did,
그래서 나는 다시 들이마셨습니다
so I breathed in again.
물거품이 일어 우리 곁을 떠다녔습니다
The foam rose and floated around us.
평생을 물 밖에서 살았지만,
After a lifetime out of water,
그곳에서 나 자신을 만났습니다
I found myself there.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I found you there.
스팍이 턱을 내리고 마이크에서 한 발짝 물러설 때도 짐은 여전히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게일라의 손가락이 제 손목을 감는 게 느껴졌다. 정중한 박수와 소곤거리는 칭찬의 말에도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일라가 스팍을 이끌고 단상을 내려와 짐이 앉은 탁자로 안내했다.
“둘이 할 얘기 있잖아요.”
그리고는 스팍을 의자에 앉혔다. 자리에 앉아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짐이 기대하듯 바라보았다.
“시 멋지네요.”
“마음에 든다니 기쁘군.”
짐이 목을 쓸더니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있죠, 동물에 비유하자면 교관님은 다른 것보다 양서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물에서도 땅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요.”
“양서류는 양쪽 다에 서식하지.”
스팍이 조용히 대답했다.
둘은 칠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고, 짐이 한숨을 쉬더니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게일라가 꾸민 거죠, 허.”
“진작 올걸 그랬어.”
“그러게요.”
짐이 맞장구치더니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생겼고 체중이 약 2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짐을 만지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등 뒤에서 게일라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짐이 눈꺼풀을 움직거리더니 다시 스팍을 바라보았다. 짐이 마른침을 삼켰다. 스팍은 짐의 목덜미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있죠, 밖이 추운 건 아는데 이것만 끝나면 나가서 좀 걸을래요?”
게일라가 시를 읽다 잠시 쉬는 동안 짐이 속삭였다.
“그래.”
스팍이 즉시 대답했다.
짐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팔짱을 낀 채 등을 기대고 앉아 게일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게일라가 준비한 시를 다 읽고 다음 낭독자를 초청하자 짐이 앞으로 몸을 기울여 박수를 쳤고, 그 때 스팍의 발에 발이 닿았다. 짐은 눈치 챈 내색도 안 했지만 피하지도 않았다.
이번 옮긴이 브금은 Dianne Reeves의 He's a Tramp.
+ + +
"At the very least, you owed him a call. Imagine how he felt, getting nothing but polite messages asking him to call you?"
“최소한 전화는 했어야지요. 짐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별다른 말없이 문자로 정중하게 전화 좀 해달라니요?”
owe a call은 앞에서도 전화 한 통 해 줘야 한다고 옮긴 적이 있다. 그때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괜찮은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
asking him to call you?에서는 you에 강조가 들어가 있어서 의미도 의미지만 말 끝에 따져 묻는 효과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순을 유지하며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결과. 이것도 맘에 든다 ㅋㅋㅋㅋ
+ + +
3장 Part 2에서 넘버원이 스팍에게 "Honey"라고 한 것을 "어쩜 좋아."라고 옮겨놓았다.
이번에도 게일라가 스팍에게 "Honey"라고 하기에 이번엔 "이 분 참."이라고 옮겨놓았다.
나한테는 이 글에 쓰인 honey가 딱 이런 느낌이라 옮겼는데, 사전에는 이런 뜻이 나와있지 않다. 억지로 갖다 붙여보자면 YBM 영한사전에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느낌상 "까다로운 사람"보다 "답답한 사람"쪽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Urban Dictionary를 보면 경험이 풍부한 여자가 남자에게 호의를 갖고 도울 마음이 있을 때 그 남자를 "Honey"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ㅋㅋㅋㅋㅋㅋ
스팍 이거이거, 누님들한테 귀여움 받는 포지션인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괜찮은데? '-'
+ + +
there were so many things about Jim that tantalized him
짐을 보면 애가 타는 이유는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이 문장은 의역할 수밖에 없어....=_=;;
+ + +
시는 이미 한 번 옮긴 적 있어서 거의 그대로 복붙.
급하게 옮겨서 얘도 수정 많이 해야할 듯... 아하하하하하.
스팍이 욕을 하도 먹어서 얼른 이 장면을 옮기고 싶었어요 '-'
남은 주말도 즐겁게 보내세요~
+ + +
14년 10월 17일 이것저것 수정. 짐이 스팍을 당신이라 부르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구야~ 내가 정신줄을 놓았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