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비루 탐험은 기대한 만큼 식은 죽 먹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워프 시대 이전 (바퀴 사용 이전) 문명을 가진 유일한 거주자들은 정착지에서 불과 1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활화산이 폭발해 행성 표면에서 쓸려나갈 판이었다.
선임 장교들과 엄숙한 표정으로 회의를 마친 커크는 행성 대기권을 넘어 바다 밑으로 엔터프라이즈호를 진입시키도록 명령했다. 현지인에게 셔틀이 보이지 않게 행성 표면에 접근해야 한다고 스팍이 유별나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 기회가 생기기까지는… 무척이나 긴장되고, 무척이나 위험스런 시간이 흐른 뒤였다. 화산은 시시각각 폭발직전으로 변해갔다. 아침이 되자 커크를 비롯해 맥코이, 스팍, 술루, 우후라를 태운 1번 셔틀이 마침내 행성 표면을 향했다. 셔틀에 탑승하면서 커크는 흘끔 일등 항해사의 표정을 살폈다.
굳은 결의. 벌칸 행성이 파괴된 이후로는 본 적 없는 표정. 스팍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커크는 분명히 알았다. 스팍은 자신의 행성을, 자신의 종족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행성은 파괴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정착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을 향해 화산재 구름까지 솟구쳤다. 커크와 맥코이는 원주민 의복과 똑같이 복제기로 만들어낸 긴 끈 모양의 천으로 본인들을 최대한 둘둘 감았다. 한쪽에서 스팍은 환경복을 고정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자 피가 차게 식었다. 능력 있고, 믿음직하며, 사랑스러운 자신의 일등 항해사가 곧 폭발할 화산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너무나, 너무나도 많은 일이 어긋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팍은 꼭 해야만 했다. ‘내가 대신 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켜버렸다.
자신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를 악 물고 근육에 힘을 준 커크는 부양중인 셔틀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구른 뒤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섰고, 맥코이는 욕을 퍼부으며 뒤를 따랐다. 셔틀이 두 사람과 멀어져 화산재 구름 속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행운을 빌어, 스팍.
...
“계획은 이래.”
커크가 바로 옆에서 뛰는 맥코이에게 숨을 헐떡이며 설명했다. 바닥은 육각형이 뭉쳐 이루어졌고, 여유만 있었다면 이러한 지질학적 특색을 본 일등 항해사가 들떴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주민을 유인할게. 스팍이 화산에 들어가는 걸 보면 안 되니까. 화산이 분화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원주민을 위험 지역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떼어놓아야 해.”
“어떻게 할 건데?”
맥코이가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나뭇가지와 무성한 지피식물에 쓸리며 붉은 나뭇잎 사이를 전력질주 했다. 두툼한 푸른 옷 덕분에 거의 아무 느낌도 없었다. 젠장, 그렇다 해도 치마를 입고 달리는 모양새였다.
“몰라. 생각해 봐야지. 잘못될지도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어. 원주민이 셔틀을 봐도 안 되지만, 우리를 잡아도 곤란해.”
“그러니까, 계획이 없다?”
천을 뒤집어쓰고도 커크는 그럭저럭 웃음이 나왔다.
“일단은. 있다가 봐, 본즈.”
맥코이와 갈라져 정착지로 향한 커크는 피라미드 같기도 하고 벌통 같기도 한 거대한 구조물을 보고 속도를 늦췄다. 붉은 덩굴이 건물 주위에 얼기설기 붙어 자랐다. 지표 아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수증기와 물웅덩이가 부글부글 끓었다. 바로 눈앞에 솟은 산에서 불길한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커크는 몸을 낮추고 붉은 초목에 난 구멍보다 조금 큰 건물 입구로 빠르게 기어 들어갔다.
인간 형태의 생명체들이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구호를 외쳤다. 피부는 마치 하얀 찰흙 같은 뭔가로 뒤덮였고 모두가 온 몸을 가리는 밝은 노란 옷을 입었다.
이를 악물고 뒤로 숨어들어갔다. 커크는 돋보였다. 푸른색이라니, 젠장. 커크가 입은 옷은 푸른색이었다. 빌어먹을 원주민들이 알아차리고는 난입하여 조화를 깨는 색을 갑자기 공격하지 않기를 바랐다.
원주민들은 원숭이처럼 끽끽대며 기도라도 하는 듯 이상한 종이 같은 물건에 절하느라 바빴다. 커크는 몸을 낮추고 행렬 뒤를 따랐다. 저게 뭐든 원주민들에게는 중요한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커크가…잠시 빌리더라도 쫓아올 정도로 중요한 물건.
호흡이 빨라졌고, 커크가 큰 두루마리를 낚아채며 무릎 꿇은 형체를 뛰어넘고, 굴렀다. 커크는 일어나서 계속 달렸다.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가 놀라서 끽끽대며 소리쳤다.
출구를 나가자마자 자욱한 재 사이로 햇살이 얼굴을 감쌌다. 쫓아오는 인영을 돌아본 커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자신을 더욱 몰아붙였다. 두루마리를 쥔 손이 땀에 젖었다.
큰 덩굴 지대를 지난 커크가 소리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괴물이 박차고 일어섰다. 이빨과, 발톱과, 딱딱하고 질긴 피부를 보고 본능적으로 페이저를 꺼내들었다. 급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괴물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고동쳤다. 쓰러진 괴물 바로 뒤에서 푸른 옷을 입은 형체가 진절머리가 난 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야 인마, 우리가 타야 하는데!”
맥코이가 복면을 벗어던지며 화를 냈다.
“탈것을 기절시키면 어떡해!”
커크도 얼굴을 감싸던 천을 벗고 기절한 괴물을 내려다보며 완전히 짜증난 듯 씩씩댔다.
“아, 환장하겠네.”
분노한 원주민 무리가 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괴성을 질렀다. 뒤를 돌아본 커크가 달아나며 소리쳤다.
“달려!”
놀라서 넋이 빠져있던 맥코이도 정신을 차리고 헐떡거리며 커크를 따라 부리나케 달렸다.
“도대체 뭘 집어 온 거야?”
“몰라!”
투덜거리는 맥코이에게 커크가 소리쳤다. 울퉁불퉁한 땅바닥이 발목에 심한 충격을 주었다. 커크는 도망치면서 균형을 잡느라 고생했다.
“그런데 여기다 절을 하더라고.”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옷자락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커크가 숨겨진 주머니에서 통신기를 끄집어냈다.
“프라임 디렉티브(최상위 불간섭 원칙)는 외계 문명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나도 알거든!”
전혀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커크가 숨을 헐떡였다.
“내가 이렇게 변장을 하고 정글을 뛰는 거 아냐! 초강력 얼음덩이 던져 넣고 가자! 커크 통신 끝!”
창이 귀 옆을 스쳤다. 맥코이가 욕을 퍼부으며 바로 뒤에서 씨근덕거렸다. 원주민들이 소리 지르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우릴 죽이려나봐! 우릴 죽이려고 한다고, 짐!”
맥코이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잠시 후 커크의 손에 들린 통신기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함장님, 셔틀을 불시착시킵니다. 알아서 엔터프라이즈호로 복귀하십시오.”
술루였다.
“끝내주네.”
커크가 막 지나친 나무에 탁하고 박히는 창을 머리를 숙여 피했다.
“무―짐! 짐! 해변은 저쪽이야!”
본즈가 불러댔다. 나무 아래로 몸을 숙여 지나치며 커크가 손을 뻗어 나뭇가지에 두루마리를 걸었다.
“나도 알아. 해변으로 안 갈 거야!”
“오, 싫어, 싫어, 싫다고!”
두 사람은 나뭇가지와 덩굴 사이로 재빨리 움직였다. 커크는 손을 들어 날카로운 잎사귀가 얼굴을 스치지 않도록 막았다. 뒤따르던 수많은 원주민은 두루마리 앞에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빠르게 뛰는 두 사람에게 멀어지는 군중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진짜 싫다!!!”
“나도 안다니까!”
커크가 잠시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고 맞받아쳤다. 붉은 숲 사이로 푸른 하늘 한 조각이 드러났다. 그 너머로, 바다의 거친 파도 소리가 뒤따르던 토착민의 시끄러운 소리를 삼켰다. 절벽이 점점 다가왔고 어느덧 발을 내딛을 땅이 사라졌다.
푸른 옷가지가 펄럭이고, 두 사람은 소리 지르며 뛰어올랐다. 바람이 휙 지나가며 숨을 빼앗고, 목구멍으로 심장이 덜컥하고 튀어 올랐다. 짧은 순간, 커크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음미했고 곧 바닷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따뜻한 파도였다. 니비루의 바닷물이 원래 유황 냄새가 나는지, 아니면 화산 활동이 바다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발버둥 치면서 두툼한 옷을 벗어던진 커크는 입가에 호흡기를 가져다 댔다. 폐에 산소가 공급되자 코로 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 숨을 골랐다. 물안경은 그 다음 문제였다. 물안경은 쓰자마자 얼굴에 밀착되더니 눈앞을 가린 물을 빼냈다.
바로 옆에 있던 맥코이는 깊은 물속에서 몸을 비틀었고 마침내 옷가지가 물 위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옷에 붙은 고속 추진기를 켜고 시커먼 어둠속으로 깊이 잠수했고 물거품이 온몸을 감쌌다.
엔터프라이즈호의 불빛이 심해에서 발광하는 생물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며 빛났다. 주 출입구에서 2차 보조 출입구로 이어지는 기밀실이 열렸다. 작은 기밀실에 들어가자마자 손을 뻗어 천장의 지지대를 잡았다.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우던 물이 빠져나가고 지지대를 잡고 있던 커크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중력을 느꼈다. 맥코이는 바닥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숨을 헐떡였다.
가볍게 착지한 커크는 물안경을 벗었고 마침 둥근 문이 열리며 스콧이 보였다.
“바다 밑에 우주선을 감춘다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아십니까? 밤새 여기 있었단 말입니다! 소금물 때문에―”
커크가 말을 끊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스코티! 스팍은?”
스콧이 걱정으로 침통한 얼굴을 했다.
“아직 화산 안입니다.”
눈을 크게 떴다. 흥분으로 뜨거웠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숨을 크게 쉬고 빠르게 달려 나간 커크를 쫓으려 스콧과 맥코이가 내달렸다. 뛰어 들어간 함교에는 마찬가지로 목부터 발끝까지 감싼 청록색 수영복을 입은 술루가 홀딱 젖은 채 자리를 지켰다.
“함장님 오셔씀미다!”
체콥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검토하느라 산만한 목소리였다.
“대위! 스팍과 통신 연결 되나?”
커크가 역시 수영복을 입은 우후라를 돌아보았다.
“열기로 통신기가 손상되긴 했지만 아직 연결은 됩니다.”
우후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걱정스럽게 우후라를 돌아본 커크가 몸을 돌려 술루 자리에 위치한 통신단말을 손으로 두드렸다.
“스팍!”
“장치를 가동했습니다, 함장님.”
대답하는 스팍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목소리 너머 우르릉 거리는 폭발음이 들렸고 생생한 공포를 느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화산 폭발이 멈출 겁니다.”
“그렇겠지, 스팍도 죽고.”
맥코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전송기를 쓸 순 없나?”
커크가 조타수와 항해사를 보며 물었다.
“안됩니다.”
“자기장이 방해함미다.”
“스팍을 데려와야 해. 뭐라도 말해봐.”
커크는 단호했다.
“어, 직쩝 보이는데, 그러니까 까까이 까면―”
체콥이 멈칫거리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
스콧이 말을 끊었다.
“활화산이라고. 함장님! 저 녀석이 폭발하면 열기를 견딜 수 있을지 장담 못합니다!”
“그만한 고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술루도 거들었다.
“셔틀은 화산재로 감출 수 있지만 엔터프라이즈호는 너무 큽니다.”
열기 때문에 통신기로 들려오는 스팍의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엔터프라이즈호로 구조 시도를 할 경우 토착민들이 볼 수 있습니다.”
“스팍, 네가 규칙에 빠삭한 건 알겠는데, 어디나 예외는 있어.”
“아니오. 그런 예외는 프라임 디렉티브에 위배됩니다.”
“닥쳐, 스팍. 널 구하느라 이러는 거잖아, 젠장!”
맥코이가 성을 냈다.
“박사,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거야.”
대답하는 스팍의 목소리는 맥코이가 늘 듣던 어조와 다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커크는 패널에 몸을 기울이고 악을 썼다.
“스팍! 네 목숨이 달렸어!”
“규칙은 절대 어겨―않―니―”
통신이 끊겼다. 커크가 몸을 돌려 우후라를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통신 다시 연결해.”
커크가 명령했고 우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거칠게 고동치는 심장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커크는 심호흡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그 잘난 낙관주의는 어디로 간 거야?
“폭발까지 90초 남아씀미다.”
체콥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왔다. 몸을 돌려 눈앞에 보이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산에 대한 모든 정보와 스팍의 생체 정보가 창 너머 짙푸른 바닷물에 겹쳐 보였다.
“스팍이 여기 있고 내가 저기 있다면, 스팍은 어떻게 했을까?”
커크는 바로 옆에서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맥코이에게 물었다.
잠시 후 맥코이가 대답했다.
“죽게 두겠지.”
스팍에게는 규칙과 명령이 최우선이었다. 그렇다 해도 커크를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맥코이가 틀렸다. 자신의 친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이 필요했다. 그저 남들과 동조하는 식으로라도 스팍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바다 밖으로 나가.”
술루에게 명령하는 목소리는 심각했다. 스콧조차도 감히 반발하지 않고, 현명하게 (걱정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맥코이도 긴장하며 옆을 지켰다.
임펄스 추진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깨어났고 주위를 감싸던 물이 거칠게 회오리쳤다. 느릿하게 엔터프라이즈호가 상승했다. 엔진이 먼저 바다위로 떠올랐고 선체가 서서히 뒤따랐다. 표면을 타고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술루가 배를 돌려 곧장 시커먼 화산으로 향했다. 전방 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뜨거운 연기를 뿜는 불구덩이 어딘가에서 스팍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커크는 그 전에 도착할 생각이었다.
...
불꽃 기둥이 폭발하고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바위 위에서 스팍은 무릎을 꿇었다. 넘실거리는 마그마 부스러기가 톡톡 튀었고 엄청나게 뜨거운 부스러기는 환경복에 닿을 때마다 쉭쉭거렸다.
스팍은 운명을 받아들이며 두 팔을 벌렸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이 두려움을, 후회를, 상실감을 어머니도 느꼈으리라. 그 순간 스팍은 어머니와 잠시나마 이어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때, 포효하는 불꽃 속에서 스팍은 익숙한 소리와 함께 전송될 때 느껴지는 무중력을 경험했다.
금색 빛줄기가 사라지자 스팍이 멍하니 일어섰다. 잠시 후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커크가 달려왔다. 청록색 수영복은 온 몸을 칠한 듯했다.
“스팍! 괜찮아?”
맥코이 박사도 바로 뒤따라 들어와 멈췄다.
“함장님, 토착민들이 저희 함선을 봤습니다.”
스팍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멀쩡하네.”
맥코이가 손을 들어 올리고 커크를 보며 약간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커크는 스팍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커크가 입을 떼기 전에 전송실 통신기가 소리를 냈다.
“여기는 함교, 함장님.”
“말해, 대위.”
“스팍 중령님이 탑승하셨습니까?”
커크가 대답하자 우후라가 되물었다.
“안전하고 무사하게 탑승했지.”
“중령님께 장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전해주세요.”
스팍은 걱정 같기도, 분노 같기도 한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커크가 이제는 조용해진 통신기와 스팍을 번갈아 보며 활짝 웃었다.
“들었지? 축하해, 스팍. 네가 세상을 구했어.”
“프라임 디렉티브를 어기시지 않았습니까.”
진짜 화가 난다는 느낌에 스팍이 이의를 제기했다.
“아, 진짜 스팍. 좀 보면 어때서 그래!”
“함장님!”
스팍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팍은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커크도 이를 눈치 챈 건지, 아니면 헬멧 너머 화가 난 표정을 본 건지 맥코이 박사와 전송실 담당 소위를 돌아보았다.
“자리 좀 비켜줘.”
커크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몸을 돌린 커크는 팔을 꼬고 스팍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나한테 소리를 질러?”
커크의 목소리는 섬뜩했지만 스팍 역시 화가 나서 이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프라임 디렉티브가 명시하기를―”
“그딴 소리 집어 치워.”
커크가 갑자기 사납게 윽박질렀다. 커크가 걸어와 스팍 바로 앞에 섰다.
“스팍.”
스팍은 소리 지르지 않으려 애쓰는 커크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마침내 방금 벗어난 용암보다 더 뜨겁게 불타는 눈으로 커크가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네 목숨하고 규칙 중에서 고르라는 소리는 하지도 마.”
분노를 감추지 않고 커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택은 하나니까, 스팍.”
커크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닫히는 문을 바라본 스팍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책임이 따를 것이다. 비록 살아남았다고는 해도 행성 원주민 역시 전과는 다르겠지만,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커크는 스타플릿 사령부에게 자신을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커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따른 결과를 자신이 아끼는 친구가 책임지도록 둘 수는 없었다.
…
환경복을 벗자 1번 셔틀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뼈와 근육이 아파왔다. 스팍은 의무실에서 천천히 방으로 돌아갔다.
맥코이 박사가 잡아둔 진료 예약이었다. 어째서인지 박사는 평소보다 더 화가 난 듯 했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가 이번 구조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
커크가 문 바로 옆에 기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스팍이 다가가자 커크가 고개를 들었다.
“있잖아, 스팍.”
평소보다 더 차분한 목소리였다. 커크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심장이 반응했다.
“안녕하십니까, 짐.”
스팍이 문을 열며 인사했다. 커크가 먼저 들어가도록 권하고 스팍이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화내서 미안하다고.”
커크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넌 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내가 심했어.”
“괜찮습니다.”
이런 커크의 모습이 낯설어서 스팍은 당황스러웠다.
“오늘 저녁엔 뭐 하려고 했어?”
“짐에게 체스를 두자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스팍이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지만, 커크와 체스를 두는 건 좋은 생각 같았다.
“그래.”
커크가 겨우 미소 지었다. 스팍이 이제는 늘 체스 판이 놓여있는 탁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고 커크가 백을 잡았다.
“술루가 셔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어.”
몸을 기울여 스팍의 폰을 잡으며 커크가 입을 열었다.
“한 5미터 높이에서 떨어졌겠던데. 괜찮아?”
“약 7.096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심하게 멍들기는 했지만 치료 불가능한 부상은 입지 않았습니다. 환경복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팍이 대답했고 커크가 다행스러운 표정을 했다.
두 번째 판을 끝내고 스팍이 한 번 더 권하자 커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씻고 눈 좀 붙이려고. 몇 주 우주에 나와 있었다고 보고서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커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스팍이 배웅하러 나섰다. 커크가 막 발을 내딛었을 때 커다란 쿵! 소리가 엔터프라이즈호를 뒤흔들었다.
커크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옆으로 미끄러지는 커크를 본 스팍이 팔을 뻗어 벽에 부딪히려는 커크를 감쌌다. 그 순간, 품안으로 들어온 커크와 부딪힌 아픔에 이어 뜨거운 열기만이 느껴졌다.
형언하기 힘든 열기가 온 몸으로 밀려들어와 숨을 빼앗고, 모든 감각을 감싸고, 결국엔 사라졌다. 한 순간에 내면세계가 무너졌다. 돌연, 모든 게 명료하면서 동시에 흐릿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너무 과했다.
엔터프라이즈호가 흔들리기를 멈춘 뒤에도 두 사람은 굳은 채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쉬었다.
그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하얗게 질려있던 스팍은 손으로 커크의 목 뒤 따뜻한 피부를 감싸고 있음을 깨달았다. 강렬한 열기 아래 내면을 뒤덮은 웅성거리는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다.
“대체, 뭐야?”
커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커크는 스팍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듯 했다. 허리띠를 잠시 더듬거린 커크는 떨리는 손으로 통신기를 열었다.
커크는 멍하니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득 스콧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걸 깨달았다.
“알았어.”
커크가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뒤통수를 벽에 대고 조금 미끄러뜨리자 스팍을 볼 수 있었다
스팍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초점 없이 반대편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팍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스팍.”
둘이 닿았다. 트하일라가 이 감정과 이 생각을 전하고 있다. 자신의 본드메이트가.
“스팍.”
짐이 자신의 본드메이트였다. 짐이 쓰러지는 그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이 닿았다. 그리고 이제 둘은 하나로 묶였다.
“스팍.”
스팍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커크가 바라보았다.
“괜찮아?”
스팍이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뇌에서 짐이 대답을 기다린다고 인식하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엉거주춤하게 일어서기도 전에 엉덩방아를 찧은 커크는 다시 기운을 내서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스팍을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던 커크가 생각을 바꾸었다.
“널 일으켜주려다 또 넘어지겠어.”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커크가 솔직히 말했다.
“젠장.”
스팍은 가만히 있었다.
“네 텔레파시인거야?”
커크가 또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스팍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유대를 통해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어와 마음속을 완전히 뒤덮어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알았어.”
커크가 방으로 돌아가려고 절뚝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스팍이 고개를 들어 커크를 바라보았다. 스팍도 일어서야 했다.
하지만 뇌가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평생 경험한 어떤 일과 비교해도 더없이 행복한 경험이었다. 왜 움직여야 하지? 움직이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
“스팍이 저런 건 나 때문이야.”
피부를 때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실 벽에 무겁게 기댄 커크가 중얼거렸다.
복도를 걷는 내내 경이로운 감각이 자신을 압도했다. 내면이 금빛으로 빛났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해도 보이지 않을 뇌 속인데도 이상했다. 어쨌든 금빛 감각이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파도처럼 모든 것을 감쌌고, 저항하기 힘든 밝은 기쁨 외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스팍. 스팍은 완전히 놀란 모양이었다. 복도 바닥에 일등 항해사를 내버려두고 온 게 마음이 쓰였지만 커크는 아직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안쓰러워서 스팍에게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스팍은 입술이 마비된 듯 고작 세 단어로 된 문장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게 텔레파시였다. 늘 이럴 리가 없었다. 적어도 델타 베가에서 스팍 대사를 통해 경험했던 건 이렇지 않았다. 커크는 스팍과 닿은 적이 있었다. 함교에서 스팍이 목을 졸랐을 때, 체육관에서 몸싸움을 했을 때... 하지만 친구가 된 이래로는 없었다. 이런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뒤로는 단 한 번도.
젠장, 스팍이 봤을까? 감정이 새어나가서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드는 걸까? 스팍은 무척 놀란 듯했다... 하지만 어쩌면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저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스팍은 완전이 넋이 나간 듯했다. 어쩌면 이 따뜻한 금빛 무언가는 스팍이 너무 놀라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이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근대는 심장은 차가운 구덩이로 기어들어가려 했다.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커크가 읊조렸다.
일상생활에서 벌칸인의 텔레파시가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경험이 풍부한 숙련자만이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인드멜드를 행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 책은 아직 가상 도서관에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다. 귀가 먹먹하지도 않고, 시야와 생각도 명료해야 했지만. 이런 상태가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나오지 않더라도 친하게 지내는 어떤 대사가 알려주리라.
하지만 샤워실에서 나온 커크는 채 몇 걸음 못 가서 고개를 파묻고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강한 감각이 그를 달래며 깊은 무의식으로 인도했다.
챕터 제목은 스타트렉이 끝날 때 나오는 유명한 말에서 인용되었기에 '항해기'라고 옮겼다.
(실은 이거 옮기려고 STID 다시 보다가 알아차렸다;;;; 아직 덕심이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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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코이가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뿜고, 술루의 냉정한 말에 역시 얘가 제일 무서운 것 같다고 떨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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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본딩이 등장했습니다!!! 11장에서 얼핏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STID를 본딩 상태로 끌고 갈 줄이야...!! 작가 언니가 태그에 달지 않아서 저 역시 추천글에서도, 여태까지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둘이 본딩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무척 중요한 장면인데 기빨려서 공들여 옮기지 못한 게 함정 orz
내일 약속이 있어서 옮길 시간이 없는 관계로 오늘 무리를 좀 했습니다 orzorz
후기고 뭐고... 일단 침대로 갈테야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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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옮긴이 브금은 일본 애니메이션 암굴왕의 OST 중 '해소(海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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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할 때마다 수학문제집 생각이... 뒷심 부족 뒷심 부족 ㅠㅠㅠㅠ
수정은.. 나중에 몰아서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