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있던 침대는 여태 본 어떤 침대보다 컸다. 짐은 성관계 전 거의 준비도 필요 없이 스팍의 손에 허리를 휘었다. 스팍은 인간과 잠자리를 한 적이 없었고 그 뜨거운 유혹에 숨이 턱 막혔다.
“오, 시발, 당신 좋아.”
짐이 악문 잇새로 중얼거렸다.
고통스럽다는 신호였다. 짐이 불편해하는 건 알았다. 맞닿은 살결마다 고통이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짐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스팍의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 넣고 스팍의 어깨 위로 내던진 다리를 움직였다. 둘이 하나가 된 광경에 경탄하며 스팍은 제 분신이 짐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울리지 않아요.
그 말을 억지로 밀어내며 스팍이 제 엉덩이를 한 번, 두 번 쳐올렸고, 절정에 이르며 감은 눈 너머로 푸른빛을 보았다.
정사가 끝나자 짐이 베개 너머로 나른하게 미소 지었고 잠들기 전 입을 맞춰왔다. 다음날 아침 5시 45분에 짐의 아파트를 떠나면서 스팍은 두 사람이 구문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제 집 음속 샤워기 아래서 스팍은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제 머리카락을 파고든 손가락과, 이빨의 뾰족한 부분과, 허벅지 안쪽 살갗의 따스함을. 혼자였던 스팍은 저를 휘감은 짐을 생각하며 지어지는 미소를 내버려두었다.
성관계 후 애정행위를 나눈 적은 없다. 벌칸인 대부분에게 성행위는 의무였다. 두 사람이 만족하면 수면을 취하거나 각자 할 일을 했다. 그 외의 신체접촉은 불필요했다. 짐은 제 손을 쓰다듬었고, 자려고 눈을 감으면서는 깍지를 꼈다. 스팍은 삼십구 분을 더 깨어 있으면서 가야 할지, 제가 가길 짐이 바라는지 고민했다. 일어나 앉아 조용히 나갈 생각에 이불을 한 쪽으로 밀자 짐이 두 팔로 허리를 껴안았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짐을 깔고 눕게 되었다. 짐의 품 안에 안겨서 스팍은 두 팔의 감촉을 기억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 팔을 떠올렸다. 스팍은 예상보다 빨리 학교에 도착했다. 점심시간 전에 만나리라 생각지 않았다. 8시에 강의실에 들어갔던 스팍은 맨 앞줄에 앉은 짐을 보고 놀랐다.
“점심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요.”
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스팍 곁으로 걸어왔다.
“잘 갔어요?”
“그래.”
짐이 문을 흘끔 바라보고 다시 스팍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은 즐거웠어요.”
어머니가 초조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무슨 뜻으로 이야기 하셨는지 스팍은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도 그랬지.”
스팍이 턱을 까딱했다.
“나중에 보겠나?”
“사실 괜찮으면 여기 앉아서 강의 듣고 끝나면 아침 먹자고 꼬셔보려고 했는데.”
“이 강의가 끝나면 업무를 봐야 하네.”
스팍이 미안한 듯 대답했다.
“그럼 점심?”
“그래.”
“저녁도?”
“그러지.”
“어제 음식 남았어요. 나가서 먹어도 되고.”
“상관하지 않아.”
“음, 생각해 보세요.”
짐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까치발을 디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생도들이 들어오자 자리에 앉았다.
강의 내내 머릿속에 그 입맞춤만 떠올라서 스팍은 열한 번이나 말하던 내용을 잊었다. 우후라 생도가 두 번째 줄에 앉아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고 스팍이 실수로 화면을 꺼버리자 눈썹을 치켜 올리기까지 했다. 옆자리에 (스팍 수업에서는 허용도 안 되는)일회용 커피 잔을 올려두고 맨 앞자리에서 엉덩이를 빼고 푹 잠겨 앉아 있던 짐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강의실에서는 커피 향이 났고, 짐이 아르겔리우스어 억양에 대한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자 스팍은 미소를 참아야만 했다.
두 사람이 교수실에 도착하자마자 짐은 스팍을 만졌고 스팍은 짐이 입은 셔츠 단추를 잡아당겼다. 짐이 스팍과 입술을 맞대고 웃었다. 스팍이 문을 잠그려 더듬거리면서 이가 부딪혔다.
“이건 적절하지 않아.”
스팍이 입을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젠장, 아니죠. 그래도 aitlu nash-veh du.”
짐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벌칸 억양으로 귓가에 중얼거렸다.
얼마 후 두 사람이 입은 제복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감추어주는지 확인하면서 스팍의 앞머리를 정리하려 짐이 손을 뻗었을 때 벌칸어를 도와달라고 한 말은 거짓이었는지 궁금해졌다.
***
짐과 함께 사는 인간이면서 (스팍이 생각하기에)외계인을 혐오하는 사람이 보내는 찌푸린 눈살을 피해 둘은 어두운 방에서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보냈다. 레오나드 맥코이라는 그 남자를 짐은 “본즈”라고 불렀다. 스팍은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맥코이와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둘만 있는 침실에서 스팍은 짐이 제 옷을 벗기게 두었다. 손끝으로 짐의 몸을 덧그렸다. 그토록 훌륭한 몸을 감상하는 일처럼 논리적인 일은 없었다. 예술작품은 찬미해야 할 대상이었다. 벌칸인이라 해도.
짐은 스팍 곁에 구부정하게 누워 제 다리를 스팍 다리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스팍의 가슴 위를 더듬었다. 스팍은 눈을 감고 짐이 그려내는 무늬로 별자리를 만들어 보았다. 그 무늬는 머릿속에서 확실하고 강력하고 어마어마한 형태를 갖췄다. 불현듯 스팍은 녹색 털과 날카로운 이를 가진 르-마트야의 형상을 떠올렸다. 몸이 떨렸다.
“괜찮아요?”
스팍이 손을 뻗어 짐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짐이 제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짐은 스팍보다 훨씬 따뜻했다. 침대 반쪽이 열기를 내뿜었다. 열기에 잠긴 스팍은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온 몸이 따뜻해졌다. 노골적으로 쓸던 손길이 느려지며 스팍의 갈비뼈를 부드럽게 애무했다. 짐이 어깨에 입을 맞췄다.
“아 맞다.”
짐이 고개를 들었다.
“금요일에 벌칸 과학 학술원이랑 진행하는 지도자 협력회의 올 거예요? 아침에 본즈한테 물어봤는데 본즈는 갈 필요 없대요. 파이크가 지휘 전공은 필수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참석할 예정이네.”
“잘됐다.”
짐이 스팍의 가슴 근육에 기대며 하품했다.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네.”
“분명히 자네가 아는 참석자가 많을 거야.”
“음, 알긴 알겠죠.”
말하는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느껴져서 놀랐다. 하지만 짐은 어둠속에서 분명히 저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매한 말이었지만 스팍은 짐이 강조하는 차이를 알 듯 했다. 제 손을 짐의 손 위에 얹고 손등을 쓰다듬었다. 해부학적으로 별 차이는 없지만 짐의 손은 제 손보다 거칠었다. 네 손가락에는 거스러미가 일어났고 엄지손가락 안쪽은 찢어져 있었다. 스팍이 집게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자 깨물어 울퉁불퉁한 손톱이 느껴졌다.
그 행동은 제 안의 뭔가를 자극했다. 흥분이 밀려들었다. 스팍은 사막에서 태어난 태초의 벌칸인이 된 기분이었다. 제 안에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성기로 피가 몰리며 짐이 되는대로 덮어준 이불이 밀려 올라갔다. 자세를 바꾸자 시트가 벗겨지면서 성기를 쓸었고 스팍이 작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짐의 손톱을 꾹 누르며 반달 모양 아픔을 한껏 즐겼다. 벌칸에는 달이 없지만 짐은 밝았고 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은 감상적이고 터무니없었다. 비논리적이야. 스팍이 머리를 뉘이자 짐이 위에 올라탔고 둘의 발기한 성기가 부딪히자 신음했다. 스팍은 상관없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
“이 행동의 목적을 이해할 수가 없군.”
둘은 짐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침이었다. 짐은 윗옷 없이 얇은 면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 머리는 헝클어진 채였다. 왼손에 커피를 들고 하품을 하더니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스팍에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는 사이 손이 닿았다. 짐은 가슴에 수직으로 손바닥을 펴서 왼쪽에 있는 벽에 평행하게 내밀라고 했다. 그러더니 스팍의 손가락을 굽혀 C모양을 만들었다. 반대편에 앉은 짐은 스팍이 내민 손에 제 손을 걸었다. 엄지손가락이 나란히 놓였고 스팍은 두 사람의 다른 피부색을 바라보았다. 짐의 피부는 분홍기가 돌면서 밝았다. 노란빛이 도는 지구의 태양 아래 제 피부는 감람석과 비슷한 빛을 띠었다. 짐도 벌칸에서는 늘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던 제 어머니처럼 보일지 궁금해졌다. 벌칸의 태양 아래 짐의 눈동자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보랏빛이나 더 짙은 푸른색이 될까. 어쩌면 쪽빛일까.
“손가락 씨름이에요.”
얼핏 내민 혀가 짐의 입술을 적셨다.
“이기는 게 목적이죠. 셋 하면 엄지손가락으로 제 손가락을 눌러봐요.”
“그렇군.”
“준비 됐어요?”
짐은 제 엄지를 곧추세웠다. 스팍도 따라했다.
“하나, 둘, 셋!”
스팍의 손아귀 힘이 더 셀 텐데도 짐이 즉시 제 엄지손가락을 눌렀다.
“제가 이겼어요. 다시 할래요?”
이 “경기”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데 짐이 제 엄지손가락을 다시 누르더니 손가락 옆을 문질렀다. 스팍이 숨이 멎을 때까지 짐은 멈추지 않았다.
“한 판 더?”
짐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물어왔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짐을 이겨보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스팍은 제 손가락을 눌러 감싼 손가락과, 제게 기대오는 짐과, 그 손의 열기가 무척 좋았다.
“연습해야죠.”
제 입술에 다가오는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스팍은 눈을 감았다.
현관이 열렸다. 스팍이 움찔하며 손을 떼더니 표정을 지우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냥 본즈 온 거예요.”
짐은 중얼거리면서 상관없이 입을 맞춰왔다. 제 입술을 지나쳐 볼에 입술이 닿았다.
“소파에서 하다 걸리지는 마라.”
무뚝뚝한 말이었다. 맥코이가 현관 통로에 놓인 초록색 유리 대접에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지 계속 쨍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바닥에서는 해도 되냐?”
짐이 되물었다. 짐은 웃으며 탁자라 부르기 걸맞은 곳에 커피를 올려놓았다. 팔걸이에 기대며 다리를 소파 위로 들어 올리자 스팍의 허벅지에 발이 닿았다. 저녁에 거실에서 세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제 어머니가 종종 하던 친숙한 동작이었다. 제 어머니의 발이 자주 그랬듯, 짐도 맨발이었고 바지는 밀려올라가 발목이 드러났다. 듬성듬성 밝은 털이 보였다. 그 모습도, 섬세한 편인 뼈도 이상하게 좋았다.
“집을 따로 구하지 그러냐?”
맥코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리가 아직 빈 방이 있다던데.”
“농담으로 들으마.”
맥코이는 심드렁했다. 스팍이 눈을 맞추고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
“교관님. 웬일로 짐이 어른이랑 연애하는 걸 보니 좋네요.”
맥코이가 짐의 머리를 가볍게 툭 치고 제 방으로 걸어갔다. 맥코이가 한 말에 스팍은 혼란스러웠다. 맥코이는 짐이 과거에 사귄 사람들의 나이가 아니라 그들의 성숙함을 이야기했다고 판단했다. 짐이 과거에 사귄 사람들을 생각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맥코이가 방문을 닫기를 기다렸다 다시 짐에게 관심을 돌렸다. 짐의 입술이 실실 웃느라 휘어졌다.
“교관님이 맘에 드나 봐요.”
짐이 발로 스팍을 쿡 찔렀다. 스팍이 얼굴을 풀었다.
“배고파요?”
“그렇군.”
“본즈가 팬케이크 진짜 잘 만들거든요. 근데 오늘은 침대로 직행해야 하는 날인 것 같아요. 나갈래요?”
“재생된 음식도 괜찮아.”
“그 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거 알면서. 우리 옷 입어요. 제가 아침 살게요.”
“그럴 필요는 없네.”
스팍이 입을 열었지만 짐이 제게 기어 올라와 제 입에 혀를 집어넣자 말을 멈췄다. 과거 연인은 잊혀졌다.
***
둘은 짐의 아파트에서 몇 블록 떨어진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스팍은 (찢어진 의자며 해진 메뉴판을 보자마자) 식당의 위생 관리 상태를 걱정했다. 제 생각을 밝히며 두 블록 동쪽에 훌륭한 크레이프를 내는 채식 식당으로 짐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짐은 칸막이 자리에 앉으며 음식이 맛있다고 (또한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했다. 짐은 재킷을 벗고 커피 마시겠냐고 묻는 종업원에게 엄지를 치켜 올렸다. 아침을 주문했고, 며칠 못 먹은 사람처럼 짐은 무척 열심히 식사를 했다.
“솔직히 이거 먹으면 죽어요?”
한 입씩 먹을 때마다 짐은 입술을 훔쳤다. 짐은 말이 나온 베이컨 조각을 아작아작 씹어 먹더니 완전히 만족한 듯했다.
“자네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좋네.”
짐의 아랫입술은 기름으로 번들거렸고 스팍은 동물성 기름임을 알면서도 핥아주고 싶었다. 그 생각에 제 심장 박동이 얼마나 오르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짐은 보상으로 식탁 밑에서 발을 들어 제 다리 위로 움직였다. 짐이 욕실에 간 동안 스팍이 아침 값을 계산했다. (하지만 또 다시 단어 선택이 이상한 게, 이 식당에 있는 욕실에는 욕조가 없었다.) 계산이 끝난 것을 알고 실망한 눈치였지만, 짐은 밖으로 나가면서 저와 팔짱을 꼈다.
일요일 오후를 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짐이 자신과 동행하길 청했다. 학기말이 가까웠기에 집에 돌아가 성적을 매겨야 했지만 짐이 제 재킷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며 속삭였다.
“같이 가요.”
성적은 나중에 매겨도 된다고 마음을 정했다. 둘은 파이크 제독의 집으로 걸었다. 파이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둘을 맞이했다.
“커크 생도, 중령. 무슨 일이지?”
“에어카 빌릴 수 있어요?”
짐이 인사도 안하고 물었다. 짐이 활짝 웃었다. 파이크 제독은 스팍을 흘끔 보고 다시 짐을 보더니 입술을 오므렸다.
“스팍도 같이 가나?”
“옙.”
짐이 대답했고 스팍은 등을 펴고 제 척추를 바로 하는데 집중했다.
“흠.”
파이크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열쇠를 찾아보지. 그걸 타고 정확히 어딜 갈 건데?”
“비밀이에요.”
짐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스팍은 안락의자에 앉아 짐의 눈을 피했지만 제 주변 시야로 커크가 웃는 게 보였다.
파이크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짐에게 시선을 주었다.
“연애 망치려는 거예요?”
“연―”
완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파이크는 스팍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곧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너니까 봐준다, 커크.”
“제독님.”
스팍이 입을 열며 헛기침을 했다.
“커크 군이 생도이긴 하지만 동료 교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긴장 풀게, 스팍.”
파이크는 현관문 근처에 있는 서랍장으로 관심을 돌렸다. 맨 위 서랍부터 뒤져나갔다.
“오늘은 누구 평가서도 쓰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는 최대한 비밀로 해.”
“네, 제독님.”
스팍이 대답했다. 파이크가 서랍에서 네모난 칩을 꺼내 던지자 짐이 오른손으로 받았다.
“고마워요.”
“차에 흠집 하나라도 나면 이 년 더 썩을 줄 알아.”
파이크가 손가락질을 했다.
“내가 한 번이라도 차 더럽힌 적 있어요?”
“네 전과를 봤지.”
파이크는 부엌으로 향했다. 짐이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으며 청바지 주머니에 칩을 밀어 넣었다.
“그거 비밀인 줄 알았는데!”
짐이 파이크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너만 컴퓨터 쓸 줄 아는 거 아니다, 인석아. 수업은 괜찮고?”
“불만 없어요. 아침 7시 반까지 학교 안 가도 되면 좋겠지만요.”
“그래서 커피가 있는 거 아니냐.”
짐이 다시 웃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눈여겨보니 둘은 사제관계가 아니라 마치 부자관계처럼 보였다. 스타플릿에 들어왔을 때부터 파이크 함장 곁에서 일 해왔지만 자신과는 이런 역학관계를 보인 적이 없다. 짐처럼, 살면서 제 속내를 털어놓을 누군가를 갖는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제게 정보와 감정을 끌어내려 늘 애쓰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사모님은 어디 가셨어요?”
파이크가 물 두 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와 둘에게 건네고 벽난로 옆에 앉았다. 불은 꺼져 있었다.
“기술지도 임무 중이야. 널 못 봐서 속상해 할 게다.”
“돌아오시면 피자 먹어요.”
짐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협력회의 때는 올 거다. 거기서 보겠구나.”
“대장님이랑 수다 떨 기회를 포기하는 거예요? 절대 안 돼요.”
“스팍, 자네도 오리라 생각하네만.”
“그렇습니다.”
스팍은 조용히 물을 마시며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얼마나 여기 앉아 있어야 할지 생각했다. 벌칸이었다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파이크가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알았고, 또한 인간 문화 규범에 따르면 자신과 짐은 파이크에게 예의를 갖춰야 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부모님도 참석하십니다.”
“그런 말 없었잖아요!”
짐이 소리쳤다.
“우리 대화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네.”
“으... 부모님 만나기 전에 며칠 여유는 있네요.”
짐이 제게 눈을 찡긋했다.
“인사말 연습은 할 수 있겠어요. 궁금해 할까봐 말하자면, 우리 엄마는 안 와요.”
“어머니 잘 지내시냐?”
“저보다 더 많이 이야기 하시면서.”
짐은 파이크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지만, 스팍은 짐이 방금 한 말을 깊이 생각했다.
짐은 제 부모님을 뵙고 싶어 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 제 부모님과 분명히 만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스팍은 소개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짐은 오늘 아침에서야 협력회의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는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있다 갈 뿐이다. 부모님을 소개하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으리라. 짐과는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함선에 배치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칼-리-피를 치른다고 하면 그 전까지 몇 년은 시간이 있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께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트프링의 아버지인 소렌이 몸담고 있는 성간 발전 추진 연구 및 개발부 대표들과 함께 오시는 중이었다. 트프링도 함께였다.
트프링이 저와 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거나 혹은 느끼는지 궁금했다. 항상 트프링을 막아왔지만, 특히 제 감정이 고조될 때는 트프링이 막연히 느끼기도 했다. 둘은 법적으로 유대를 맺었다. 트프링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둘은 함께하게 될 터였다.
목이 갑갑해 마른침을 삼키며 잔을 내려놓았다. 짐이 고개를 갸웃하며 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괜찮네.”
짐이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가야겠어요.”
짐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쿠션을 대충 정리했다.
“차타고 한 시간은 가야하거든요.”
“금요일에 정복 입어야 된다.”
문으로 나서는 둘에게 파이크가 당부했다.
“부츠도 닦고 간다고 장담하죠.”
손으로 허리를 다정하게 밀면서 짐이 스팍을 복도로 내보냈다.
파이크는 아파트 건물 뒤편 보호막 안에 에어카를 세워 두었다. 짐이 보호막을 들어 올려 차를 빼고 도로 위에 올라 목적지를 입력했다. 컴퓨터가 확인하는 소리에도 짐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도심에서 자동 주행은 못 믿겠어요.”
도시 경계선을 넘어설 때까지 짐은 종종 조종간을 잡았다.
차량이 줄어들었고, 둘은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자동차들이 도로 위로 떠다니는데도 지구의 도로가 포장이 된 건 신기한 일이었다. 에어카가 지나다닐 길을 나타낸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지구인 중에는 핸들에 의지해 전진하는 골동품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짐이 음악을 켜자 현악기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짐이 스팍에게 손을 뻗었고, 둘은 노래를 듣는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 목적지는 어디지?”
“믿어 봐요. 멋지니까.”
놀라움을 주는 일에서 논리는 찾지 못했지만, 그 생각이 명백히 짐을 기쁘게 하기에 스팍은 등을 기대고 맞잡은 손에 집중했다. 제 행동이 부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배운 것을 전부 어기는 행위였다. 어린 시절 제 어머니를 변호했을 때, 아버지는 감정이 저를 지배하게 두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통제 불능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은... 단순한 느낌이었다.
옮긴이 브금은 토니언니와 동안오빠의 Roller Coaster. 누가 90년대 감성이라는데, 90년대 감성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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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ss was all Spock thought about during lecture, which explained why he lost his place no fewer than eleven times. 강의 내내 머릿속에 그 입맞춤만 떠올라서 스팍은 열한 번이나 말하던 내용을 잊었다.
앞부분을 직역하면 그 키스는 강의 내내 스팍이 떠올린 전부였다.가 되는데,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가 사물 주어를 잘 쓰지 않는 거란다. 그래서 스팍이 주어가 되게 바꿨다. 하지만 내가 번역투에 물들어서인지 일부러 저 직역을 쓰고 싶을 때가 있긴 하다 ㅋㅋㅋ 사실 번역투도 나름대로 표현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으니 잘 선별해서 쓴다면 그렇게 나쁠 것도 없지 않나?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
그건 그렇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C.C.가 좀 풋풋하긴 한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를 열 한 번이나 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이 그래도 이상할 판에 벌칸인이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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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tlu nash-veh du. 당신을 원해요.
작가가 해석을 적지 않은 벌칸어는 나도 굳이 해석을 적지 않는데 궁금해서 찾아봤다. (There is a reason 같은 경우는 지문을 보면 대충 의미가 짐작이 된다) 단어만 찾아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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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r, as they ensured their uniforms didn't bely what had just happened,
얼마 후 두 사람이 입은 제복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감추어주는지 확인하면서
→Later, as they ensured their uniforms belied what had just happened,
Later, as they ensured their uniforms did belie what had just happened,
bely는 belie의 구식 스펠이라고. belie의 의미는 '(진실을) 감추다'이기 때문에 상황상 didn't가 들어가면 의미가 이상하다. didn't를 넣고 옮겨보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드러내는지 확인하면서'가 되는데 동네방네 우리 일쳤어요 자랑할 거 아니고서야... ensure에 다른 뜻이 있나 아무리 봐도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화살표 아래 문장으로 생각하고 옮겼다. 두 번째 문장이 원래 의도된 문장인데 습관적으로 didn't를 썼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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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ck flinched and removed his hand, schooling his features into neutrality and sitting forward on the couch.
스팍이 움찔하며 손을 떼더니 표정을 지우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school에 (표정을) 짓다, 가다듬다라는 뜻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영한사전에는 훈육하다, 가르치다, 훈련시키다 이런 것만 나와서 내가 잘못 알았나? 하고 윅셔너리를 뒤져보니 거기엔 나오더라. 앞으로도 확신 없는 일 생길까봐 적어둠.
school (v.)
1. 생략
2. 생략
3. (transitive) To control, or compose, one's expression.
She took care to school her expression, not giving away any of her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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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ck heard a series of clinks as McCoy ostensibly emptied his pockets into the green glass bowl kept within the entryway.
맥코이가 현관 통로에 놓인 초록색 유리 대접에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지 계속 쨍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사전을 찾으면 ostensibly의 뜻이 표면상으로, 겉으로는 이라고 나온다. 도대체 표면상 주머니를 비운다는 게 뭔 소린가 고민을 해 보았다. 영영사전을 보니 ostensible은 공식적으로는 사실이라고 하지만 말하는 당사자나 혹은 다른 사람이 의심하는 것을 묘사할 때 쓰인다고 한다. It's ostensible하면 "그렇다는데 잘 모르겠어." 이거네.
아무튼, 이 사전, 저 사전을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을 땐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려본다.
맥코이가 귀가했다. 스팍은 맥코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소리만 들린다. 계속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주머니를 비우는 것 같다. 하지만 제가 확인한 게 아니니 확신은 없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인 듯. 확실히 ostensible은 적확한 단어를 제시하기 힘든 단어 같다. 나라면 이런 경우엔 그냥 seem을 쓰겠어...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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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말투는 선배에게 잔망떠는 후배 말투랍시고 하는 건데, 내가 여자라 그런지 여성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앞 부분과 뒷 부분의 퀄리티 차이가 하하하하하하...